중국어를 번역합니다. 주로 단메이(耽美) 소설을 올립니다.
  • 그들은 여러 해 동안 적수로 지내며 쓸데없는 말을 몇 마디 이상 늘어놓지 않았다. 지금 한 방에서 같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허리띠를 풀어 옷을 벗고 있자니, 정말 세상사는 변화 무상하고 이루 형용할 수 없이 오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건의 경위를 조사해야 하는 이상,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제일 먼저 살해당한 좌부풍 정완이다. 장안성과 부풍군은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초명윤과 소세예는 지나치게 겉치레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또 가져가야 할 짐이 무거울 정도로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조정의 사무를 속관(属官)에게 간단히 인계한 후,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그들은 말 한 필씩에 탄 채로 성을 나섰다. 둘의 걸음은 극도로 빨랐다. 물결이 세찬 강물을 건너고 고요가 흐르..

    23장

  • 어쩐지 이런 사람이 지금까지 아내를 맞은 적이 한 번도 없더라니 맑은 달밤, 소부(苏府). 동물 형상의 향로 안에 향을 몇 숟가락 더하자, 가느다란 푸른 연기가 끊임없이 느리게 피어오르고는 흩어졌다. 소세예는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금의 현을 조인 뒤, 몇 개의 음들을 손 따라 뜯어내었다. 그 소리는 마치 옅은 샘물이 흐르는 듯 가볍게 울렸다. 그는 마름 무늬가 새겨진 탁자 앞에서 잠시 조용히 서 있다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밤은 깊고 이슬은 영글어가는데, 귀하께서는 청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찾아오셨군요. 무슨 일입니까?" 방 밖에서 갑자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울리더니, 아름답게 조각된 창문이 밖에서 천천히 밀어 열렸고 웃음기 띈 목소리가 들려왔다. "꽃을 꺾으러 왔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

    21장

  • ※20장 이후를 연이어서 번역하기엔 힘이 너무 부쳐서 일단 제가 좋아하는 부분을 먼저 번역한 것입니다. 아직 33장까지 읽지 않으셨다면 먼저 동인번역이나 파파고를 통해 앞 내용을 읽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 번역물을 다시 읽으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처음에 초명윤이 진사항을 만나는 부분을 생략하고 번역한 게시물입니다. 이 번역물은 제가 33장까지 번역한 이후에 군유질부>기타에서 군유질부>본문으로 옮겨갈 예정입니다. 군유질부 오디오드라마 BGM인 '万蝶振翅'를 들으면서 읽으면 더 좋아요. 순식간에 만 마리가 넘는 나비가 돌연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고, 나비의 날개가 파닥거리며 가슴 가득히 덮쳐왔기에 마음이 완전히 혼란스러워 어찌할 도리를 몰랐다. 성으로 돌아가는 오래된 길에 준마가 천천히 걷고 있었..

    33장

  • 소 대인은 당신과 제가 아주 잘 어울린다고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진사항의 그 기세 속에는 동귀어진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의 손안에 있는 비수가 날카로운 빛을 내며 매섭게 초명윤을 향해 떨어졌다. 고개를 돌린 초명윤은 그의 손을 식은 죽 먹듯이 내리쳐 그를 떨쳐버렸다. 땅에 세게 넘어진 진사항은 손에서 놓친 비수가 아주 먼 곳까지 내동댕이쳐졌음에도, 본체만체하고 몸을 일으키자마자 다시 급작스럽게 달려들었다. 두 손을 아무런 규칙 없이 되는대로 휘둘렀는데, 결국 고집스럽게도 초명윤의 머리끈을 잡아당겨 끊어버렸다. 까마귀처럼 검붉은 긴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양어깨에 풀어뜨려졌다.  "쯧."  인내심이 바닥난 초명윤은 그를 한 손으로 잡아서 땅에 넘어뜨리더니, 발을 들어 아직도 발버둥 치면서 기어올라 ..

    20장

  • 완강하게 저항해도 소용없습니다, 당신들은 승산이 조금도 없으니까요.  모든 것이 한순간에 벌어졌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모 지배인은 폭발한 듯이 소리쳤다."빨리 안 들어오느냐!"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한 무리의 흑의인이 문을 부수고 들어왔고, 이에 반응하듯 일제히 몸을 돌린 붉은 옷의 무희들도 옆에 놓여있던 거문고와 비파 안에서 연검을 뽑아 들고 초명윤의 곁으로 바싹 접근했다. 조용히 발걸음을 몇 보 정도 뒤로 옮긴 소세예가 손을 들어 손안에 있던 찻잔을 던졌다. 매우 뜨거운 찻물이 정면으로 뿌려지자 맨 앞에 있던 흑의인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기울여 피했다. 이윽고 눈앞에 그림자가 순식간에 지나갔는데, 바로 남색 옷을 입은 남자가 몸을 재빠르게 옆으로 돌린 것이었다. 흑의인은 손목이 아파짐과 동시..

    19장

  • 완독 후 휴유증에 작가님 웨이보에 올려진 글들을 번역 및 백업한 것입니다. 출처는 각 번역 위 링크를 눌러주세요.군유질부 완결 스포도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완독 후에 읽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마지막으로 군유질부 봐주세요~ 진강문학성에 전편 잠김없이 무료로 풀려 있습니다. 쉬운 권모물이라 난이도도 낮아요. 군유질부 소개군유질부란? 중국의 작가 여사아문(如似我闻)이 2016년 7월 25일 ~ 2017년 5월 31일(외전 완결은 2017년 7월 1일) 동안 진강문학성에서 연재한 소설입니다.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소설은 진강문학성에서my-wuxia-xianxia-essay.tistory.com  1. https://weibo.com/6200570572/4113993641195868#자기_전_인생을_사색해보..
  • 내가 맞추기는 했는데, 이긴 걸까  초명윤과 소세예는 위층으로 초빙되었다. 방 안은 화려하고 진귀한 것들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야광주로 만든 등불이 있었고 주렴은 광채를 발했다. 아리따운 시녀가 차와 간식을 바치자, 두목은 몸을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두 나리께서는 잠시 기다리십시오, 소인이 주인께 알리겠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자 문을 닫고 물러났다. 초명윤은 뒤돌아서 스스로 차 한 잔을 따르고는, 소세예의 옆으로 가서 같이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산의 검푸른 빛 같은 야경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지?" 소세예는 고개를 돌려 눈을 내리깔고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시녀를 바라보았다. 다시 고개를 돌린 그는 초명윤에게 가까이 다가서서 목소리를 낮춘 채로 말했다. "여기가 어딘지 알아냈습니다." 손 가는 ..

    18장

  • 공자께서 즐거우시다면 되었습니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자태가 비범했고 가면 아래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구부러져 있었으며, 한 쌍의 눈동자 속에 냉담한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는 몸을 노름판에 비스듬히 기댄 채로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사람을 관찰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기에, 허동은 마음속에 담긴 불쾌한 감정을 억누른 채로 물었다. "왜 웃는 거지?" "허." 초명윤이 유유하게 말했다. "하늘 높고 땅 두터운 줄 모르는 사람이 있길래 웃었지. 분명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아주 소탈한 이로 생각하는군." "그게 무슨 뜻이야?" "한낱 꽉 막힌 곳에서 먼 곳을 겨우 몇 번 본 것에 지나..

    17장

  • 제가 그렇게나 배운 것도 능력도 없는데, 교만한 데다가 방탕한 사람 같습니까  석양빛의 잔광마저 높고 험준하게 깎아지른 산봉우리에 삼켜져, 밤의 어두움이 세상을 가득 뒤덮었다. 밝은 달은 광채를 쏟아내었고, 그렇게 한쪽으로 비친 장안 교외의 죽림(竹林)은 쏴쏴 소리를 냈다. 대나무 그림자가 어슴푸레 비치는, 그윽하고도 기이한 곳에서 희미하게 사람 소리가 바람 속에서 부서졌다. "소 대인. 갑자기 느끼는 건데, 당신이 도박장을 조사하러 온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정황을 보아하니, 어떻게 봐도 밤에 밀회하러 가는 것 같습니다. 괜찮으니 진솔하게 터놓으십시오, 혹시 이미 마음이 움직여서 저에게 무슨 짓을 할 속셈이 있으신 것 아닙니까?" "⋯⋯ 제가 뭘 할..

    16장

  • 그 애가 천 리 길을 끌려간 끝에 기루에서 몸을 팔고 있기라도 하는 걸까   임안 쪽에서 소식이 전해져 왔을 때, 정원에 있던 초명윤은 한창 오래된 죽간이나 도책(圖冊)과 같은 서책들을 햇빛 드는 곳 여기저기에 펼쳐 놓고 있었기에 따뜻한 바람 속에 먹물 향기가 풍겼다. 병서(兵書)를 쥔 손으로 이마를 가린 그는 보기 드물게도 멍하니 있더니, 자신이 들은 것을 의심했다. "너 방금 그게 무슨⋯⋯ 진현문의 손자가 지금 어디에 있다고?" 무표정인 얼굴을 한 진소는 거리가 두 장쯤 되는 서책 너머에서 초명윤을 바라보며 한 말을 반복했다. "수도 중심에 있는 홍수초라고 합니다." "허, 정말 재미있네." 초명윤이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 애가 천 리 길을 끌려간 끝에 기루에서 몸을 팔고 있기라도 하는 걸까?" ..

    15장

  •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최종적으로 상소문이 올라올 때, 소세예는 초명윤을 언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회남왕이라는 글자를 쓰지도 않았다. 회남왕은 여러 지방의 제후 중에서도 세력이 지극히 큰 자인데다가 강남(江南)의 땅은 풍요로웠기에, 그 자는 황제가 작위를 내릴 때도 황실과 비교될 수 있을 정도로 겉치레를 했다. 횡포를 부리며 날뛰는 인품이었지만, 수하의 군대와 병사들은 우수했다. 담경이 말한 내용의 진위 여부는 제쳐두고, 가령 이게 사실이더라도 담경 한 사람의 말만 듣고 그 자를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지금 풀을 베어 뱀을 놀라게 하기 보다는 차라리 느릿느릿하게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나았다. 이연정은 조회가 끝난 후 사람을 시켜 소세예를 어서방으로 불렀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의외로 ..

    14장

  • 소 대인께서 말하시기만 하면, 제가 옷을 벗고 난 뒤 손으로 더듬으면서 꼼꼼하게 찾으셔도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무슨 의도로 이 말씀을 하시는지요?" 그가 물었다. "네가 알 필요는 없다." 남자가 창가에 서서 곡강과 하늘이 서로 맞닿은 광활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나 많은 화약을 들여와 창고에 두기만 하고 팔아 버리지도 옮기지도 못하게 하심은, 제가 누군가가 들이닥쳐 조사당하기 전까지 기다리고만 있으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가 이를 조금 악물며 말했다. "지금 저를 버리는 패로 삼으시겠다는 겁니까?" 남자가 갑자기 웃더니 몸을 돌려 담경을 보았다. "이렇게 하지 않더라도 너는 오래 견딜 수 있겠지만, 네 아내는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담경은 갑자기 놀라 깨어났다. 그가 몸을 일으켜 ..

    13장

  • 만약 지금 말을 해도 괜찮았더라면, 초명윤은 소세예의 몸매를 칭찬하고 그 반응을 보고 싶었기에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창고 안은 음침하고 서늘했으며, 벽에 하나 있는 작은 창문에서 들어온 빛은 조금 어두컴컴했다. 벽 옆에다가 겹겹이 쌓아 올린 수십 개의 큰 상자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소세예는 앞으로 나아가서 잠시 진지하게 자세히 관찰했다. 그가 손을 내밀어 상자를 천천히 열자, 초석 향이 갑자기 코를 찔렀다. 상자에 가득 들어있던 것은 흑색 화약이었다. 초명윤은 눈썹을 찡그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는 손을 휘저어 코를 찌르는 냄새를 흩뜨렸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감탄했다. "이상하군요, 이곳은 대체 뭘 하는 곳이길래 화약이 이렇게나 많은 겁니까. 참, 당신이 보시기에도 여기 있는 화약을..

    12장

  • 저 외에 만나고 싶은 이가 또 있으십니까   엄엽(嚴燁)은 진소를 따라 태위부로 들어서서, 길을 따라 구부러진 주홍빛 처마를 지나 서재로 향했다. 그는 길을 걸으며 관저의 풍채에 감탄하면서 몇 가지를 떠보며 물어봤지만 이 흑의를 입은 남자는 그에게 뒷모습만 보이며 '응'이라는 소리만 냉담히 낼 뿐이었다.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었기에 그는 씩씩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앞서 가던 진소가 걸음을 멈추고 느리게 서재 문을 열자 그는 재빨리 표정을 잘 갈무리했다. 초명윤은 붓을 들어 지도에 무언가를 그리다가, 발걸음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며 엄엽을 멀리 바라보면서 말했다. "뭐 하러 온 건가?" 엄엽은 예를 표하고는 웃으며 답했다. "하관은 대인께서 진 상서(尚書) 선생의 소식을 알아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

    11장

  • 지금의 폐하께서는 정사와 국무, 천하의 일을 제외한 모든 일에 정통하시며, 특히 조각과 그림에 뛰어나셨다 장안성이 하룻밤 사이에 또 다소 왁자지껄해졌다. 대하의 어린 제왕 이연정(李延貞)이 제위에 오른 지도 팔 년이 되었다. 흉노의 난이 훨씬 전에 진압되었으며 국가들은 서로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고 몇 년 전에 있었던 흉년도 지나가니, 이 천하는 마침내 옹화라는 연호처럼 점점 무사태평한 모습이 환히 드러나고 있었다. 천하의 일이 그럭저럭 괜찮아지자, 이연정은 곧 관심을 자신에게로 쏟았다. 선제는 후사가 부족했던 데다가 청장년일 때에 일찍 승하하였기에 이연정은 약관이 되기도 전에 즉위하였다. 당시엔 흉노가 자주 난을 일으켰고 정세가 요동쳤기에, 궁에 들어와 윗사람을 섬기는 비빈(妃嬪)은 황제의 인척들이 급..

    10장

  • 떨어진 낙엽 한 잎으로 천하가 가을을 맞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날 동틀 무렵에 수도 교외에서 시체 한 구가 발견되었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그 시체는 얼굴 가죽이 모두 뜯겨 피범벅이 되었기에 참혹하여 차마 볼 수가 없을 정도라 했다. 경조부윤(京兆府尹)이 급히 사람을 파견하여 체형의 특징을 몇 번 검사한 끝에 이 자가 지금의 장원, 송형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어서 나타난 한 남자가 시험에 떨어진 이후 마음에 질투가 생겨 순간 충동으로 이런 악랄한 수를 통해 남을 해쳤다고 스스로 자수했다. 바로 이 사람이 송형에게 호화로운 저택을 준 사람이라고 했다. 원래 무슨 의리가 있는 선비인 줄 알았으나 마음씨가 이렇게나 악독할 줄을 누가 예상했겠는가. 죄의 증거가 모두 갖추어졌으므로, 감옥에 구금한..

    9장

  • 제게 입 맞춰 주시면, 앞으로 서로 빚지지 않은 셈 치지요   석벽 위에 갈라진 금이 한 점에서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하더니, 몇 번 답답한 소리가 울리고 나서는 돌덩어리로 부서져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온 땅에 돌 파편이 튄 후에야 폭이 좁은 숨겨진 통로가 환히 나타났다. 소세예가 손을 거둬들이자 손가락 사이로 차갑고도 뾰족한 것이 번쩍거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소매 속으로 숨겨졌으나, 초명윤은 그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건 소매 속에 있던 단검이었다. 어쩐지 전혀 주저하지 않고 접선을 부러뜨리더라. 원래 자기 몸에 무기를 지니고 있었던 거였군. 소세예는 벽에 걸린 촛잔을 잡고는, 고개를 돌려 초명윤에게 몸을 일으키라는 듯 손짓했다. 초명윤은 어깨를 움직여 보면서 일어섰지만, 마음속으로는 소세예가 ..

    8장

  • 소 대인, 소매를 자르셨습니다   초명윤이 손을 놓아 소세예를 놓아주고선, 손을 들어 화살을 뽑아내 옆으로 던졌다. 그의 안색은 이미 미미하게 창백해져 있었는데, 미간을 찡그리는 것 빼고는 행동에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초명윤은 어깨에 끊임없이 번지기 시작하는 짙고 검붉은 핏자국을 훑어보고는 말했다. "그런대로 괜찮군요, 화살에 독이 없었습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구멍을 지혈하고는 끝내 긴 한숨을 쉬면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이런 말은 정말 마음대로 하면 안 되겠습니다. 버텨낼 수 있겠다고는 했지만, 지금 정말 저의 이 한 몸으로 당신을 막아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러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기관이 있으니, 적어도 이 길이 옳다고 말할 수 있겠군요." 초명윤..

    7장

  • 초 대인께서는 원래도 저를 무슨 청풍에 맑은 달처럼 공명정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터인데, 제가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지하 감옥은 조금 괴이했는데, 이건 초명윤과 소세예가 모퉁이를 돌아본 후에야 알아차린 것이다. 모퉁이에서 몇 보 이상 걸어가면 등잔이 모두 밝게 타오르고 있어 주위가 밝았으나 시선을 멀리 두어 보면 그들이 지나온 곳은 어두워서, 마치 한 선으로 음과 양의 경계를 나눈 것 같았다. 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눈앞에 나타나는 감방이 더 많아졌는데, 두께가 튼튼한 문 위에는 크기가 작은 쇠창문이 단단하게 닫혀 있었고 그 안에는 사람의 숨소리 하나 없이 전부 비어 있었다. 공기에 피비린내가 진하게 깔려 있었기에, 걷는 동안 케케묵은 냄새가 위로 일어났다. 주변은 ..

    6장

  • 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밤인가 밤바람이 일고, 나무에 꽃이 만발했으며, 휘황찬란한 별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천하에서 가장 번화한 장안성은 밤이 되어도 여전히 아주 왁자지껄했다. 그리고 이 밤에는 성 서쪽에 있는 저택이 특히나 문전성시를 이룬 것처럼 보였다. 아름답고 화려한 마차가 길에 가득했는데, 유명한 황제의 인척이며 조정의 고위직 관리들까지 거의 다 모여 있었다. 초명윤의 시선이 주변을 훑어보다가, 문 앞에서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송형에게로 떨어졌다. "육부 상서 중에 네 분이 왔는데, 문신과 무관이 반반이군. 이 장원 나리께서는 참으로 체면이 아주 서시겠어." 그가 목소리를 잠시 멈추곤 냉소하며 이어 말했다. "간덩이가 아주 크구나." 과거 시험에서 장원 급제를 한 사람은 여태까지..

    5장

  • 정말 잘됐네, 이젠 이야기가 한 마디도 나오질 않아 그들은 두 사람이 문을 나서는 그 순간, 약속이나 한 듯이 초명윤과 소세예가 상가에 징수하는 국도 관리 세금 같은 오래된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멈췄으며, 자신들이 분쟁에 대해 마음을 졸일 처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몰랐다. 두 마리의 커다란 여우가 서로 마주 보며 웃었고, 소세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초 대인께서 이러시는 뜻이 무엇인지요?" "뭘 말입니까?" 초명윤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아월이 길에서, 이번에 수도에 온 것은 친구가 있는 곳으로 일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초 대인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초명윤이 느릿하게 말했다. "두월이 소 대인을 사사로이 만난다는 것을 빨리 알았더라면, 진작에 오라고 불렀을 겁니다." 소세예가 희..

    4장

  • 보아하니 저와 소 대인은 정말 인연이 있나 봅니다   주루(酒樓) 안 가희(歌姬)의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가 누각 위층까지 어렴풋이 들려왔지만, 아쉽게도 그곳에 있는 두 사람은 지금 고상한 흥취라고는 돋지 않았기 때문에 귀 기울여 들을 마음이 없었다. 초명윤은 금박을 입힌 서화가 그려져 있는 부채를 몇 번이고 손으로 펼쳤다 접었다 하더니, 결국엔 견디지 못하고 탁상에 내버려 두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어 방 안의 고요를 깨트렸다. "육 년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나의 관저로 오기는커녕 오히려 주루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다니. 두월(杜越)은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그는 심심하기 그지없다는 듯 백자(白瓷) 잔을 손끝으로 들고 감상하면서, 옆에 앉은 진소에게 물었다. "그 띨띨한 머리로 수도의 ..

    3장

  • 세예, 저는 오랫동안 그대를 좋아해 왔습니다   장안에서 출가하지 않은 소저에게 마음에 드는 낭군을 신랑감으로 고르라고 한다면, 수석을 차지할 자는 틀림없이 당대의 어사대부인 소세예일 것이다. 소세예의 출신은 명성이 자자했는데, 조상 3대가 모두 명장이었다. 아버지인 소결(蘇決)은 선대 황제가 붕어 전에 어린 황태자를 부탁한 신하인 데다가, 그는 삼공(三公)이라는 자리에 있었으니 황제의 신임이 두터웠다. 거기에 뜻밖에도 그의 성정은 오만하게 남들을 깔보는 경우가 극히 드물 뿐만 아니라, 인품이 우아하고 기품이 있었으며 원래 사람을 대할 때는 온화하고 예절 바른 사람이었다. 자기 가족이 혼담을 꺼낼 시기가 왔다고 여기는 사람은 설사 완곡한 거절을 여러 번 겪는다고 할지라도 굴복하지 않고 그를 사위로 삼으려..

    2장

  • 군유질부 소개군유질부란? 중국의 작가 여사아문(如似我闻)이 2016년 7월 25일 ~ 2017년 5월 31일(외전 완결은 2017년 7월 1일) 동안 진강문학성에서 연재한 소설입니다.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소설은 진강문학성에서my-wuxia-xianxia-essay.tistory.com 특히 소세예에게 또렷이 들리도록 해 대하(大夏), 옹화(雍和) 8년, 때는 하지(夏至). 수도 장안의 교외에서는 바람이 불어 숲의 바다에 푸른 파도가 일었다. 맑은 바람 소리가 멀리 울려 퍼지자, 갑자기 검은 새가 우거진 수풀 사이를 스치며 높은 하늘로 치솟아 날아올랐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그 검은 새는 날갯짓을 하며 높은 성루를 가로지르곤 번화가를 지나 태위부(太尉府)의 정원으로 하강하더니, 검은 옷에 얼굴이 준..

    군유질부 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