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협선협답사기
주로 단메이(耽美) 소설을 번역한 개인 작업물을 백업합니다.
@mingmengsung
15장
그 애가 천 리 길을 끌려간 끝에 기루에서 몸을 팔고 있기라도 하는 걸까

 

 

임안 쪽에서 소식이 전해져 왔을 때, 정원에 있던 초명윤은 한창 오래된 죽간이나 도책(圖冊)과 같은 서책들을 햇빛 드는 곳 여기저기에 펼쳐 놓고 있었기에 따뜻한 바람 속에 먹물 향기가 풍겼다. 병서(兵書)를 쥔 손으로 이마를 가린 그는 보기 드물게도 멍하니 있더니, 자신이 들은 것을 의심했다.



"너 방금 그게 무슨⋯⋯ 진현문의 손자가 지금 어디에 있다고?"



무표정인 얼굴을 한 진소는 거리가 두 장[각주:1]쯤 되는 서책 너머에서 초명윤을 바라보며 한 말을 반복했다.



"수도 중심에 있는 홍수초[각주:2]라고 합니다."

"허, 정말 재미있네."



초명윤이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 애가 천 리 길을 끌려간 끝에 기루에서 몸을 팔고 있기라도 하는 걸까?"



진소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아무렇게나 병서를 땅바닥에 두었고 곧이어 그의 발끝에서 일어난 가벼운 바람에 책장이 흔들거렸다. 눈 깜짝할 새에 진소의 옆에 안정적으로 착지한 그가 입을 뗐다.



"되었다. 내가 가 볼 테니 너는 관저에서 내 소식을 기다리고 있어."

"네."



그의 말에 대답한 진소가 사람이 발을 딛을 수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에 펼쳐진 책들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사형, 이 책들은⋯⋯."

"너에게 맡기마."



초명윤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음."



진소가 목소리를 냈다.









홍수초 안은 꽃으로 빚은 술 향기가 흩날렸다. 향락을 찾아온 손님들은 술잔을 주고받았고, 아리따우면서도 농염한 여자가 줄곧 애교가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 아래층의 대청(大廳)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정이 깊어 헤어지기 어렵다는 내용의 노래를 불렀으나, 그 위층으로는 벽에 막혀 또렷이 들려오지 않았기에 그곳에 있는 방은 유달리 고요했다.

관찰하던 눈빛을 거둔 소세예는 차를 올리는 하녀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수고를 끼쳤네요."

"공자께서 예의를 차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하녀가 얼굴을 붉히며 한쪽으로 물러났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요."



휘장을 은으로 된 갈고리에 건 정주가 고개를 돌려 뒤에서 그녀의 손을 끌어당기는 소년에게 말했다.



"괜찮으니 나오렴."



그 소년은 꾸물거리며 소세예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용모는 맑고 빼어났지만, 얼굴빛이 조금 창백했고 불안한 듯이 벌벌 떨면서 소세예를 바라보고 있었다.

꼼꼼하게 그를 본 소세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뗐다.



"네가 진사항(陳思恒)이구나?"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세예가 가벼이 웃고는 온화하게 말을 이었다.



"어렸을 적에 나를 만난 적이 있었을 텐데, 지금도 기억나니?"



진사항은 머뭇거리며 소세예를 힐끔 보고는 전심전력으로 고개를 저었다.

소세예는 잠시 망설이다가 시선을 옆에 서 있는 정주에게로 돌렸다.



"낭자께 감사를 전하는 것을 잊었군요. 그때 낭자께서 구하시지 않았더라면, 이 아이도 불바다에 잠겨 죽어갔을 것입니다."

"저는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을 뿐, 사소한 수고를 한 것에 불과합니다."



정주가 말했다.



"다만,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소세예가 이어 말했다.



"낭자께서는 일개 여자의 허약한 몸으로 어떻게 소년 한 명을 불바다 속에서 꺼내오신 겁니까?"



정주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제게 그런 기량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아이가 어찌어찌 스스로 달려 나오다가 제 마차 앞에 넘어져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이 어린 나이에 가련해 보이길래 우선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지금 아는 사람이 찾아왔으니, 저도 대단히 안심됩니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소세예가 정수리만 내민 진사항을 바라보면서 좀 곰곰이 생각한 후에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냈다.



"나는 네 할아버지와 같이 일했었어. 그분과 우리 집안은 늘 사이가 아주 좋았었지. 그래서 내가 너를 오랫동안 찾은 거란다."



진사항은 말이 없었다.

소세예는 인내심 있게 말을 이었다.



"나는 너를 도와주러 온 거니, 나를 무서워할 필요 없어."



이 남자의 이야기를 건네는 목소리는 따뜻하고도 부드러워서, 뻣뻣하게 굳었던 진사항의 몸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살짝 풀어졌다.

소세예는 이를 보고 더 천천히 말을 했다.



"그날의 일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니?"



느리게 고개를 든 진사항이 정주를 힐끔 보고는, 소세예를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은 막연하다는 듯 텅 비어 있었는데, 마치 악몽 같은 밤에 잠겨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듯했다.



"전⋯⋯ 선명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너무나도 어지러웠고, ⋯⋯ 눈에 보이는 게 다 불이었어요⋯⋯."



소세예가 입을 열어 유도하려고 했으나, 그 순간 진사항이 떠듬거리며 계속 말을 했다.



"저한테 들려왔던 건 ⋯⋯ 부친께서 누군가랑 나누던 이야기 소리뿐이었어요. 그분께서 그 사람을 뭐라고 부르셨냐면⋯⋯."

"그 사람을 뭐라고 부르셨는데?"



소세예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 ⋯⋯ 그 사람을,"



진사항의 목소리가 몇 번이나 멈칫거렸다. 안색에 조금 고통스러운 기색을 드러낸 그가 우물거리면서 이어 말했다.



"그를 태(太)⋯⋯."

"아휴, 아휴, 나으리! 우리 아씨는 손님을 만나지 않으십니다!"



갑자기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여자의 목소리가 진사항을 흠칫 놀라게 했다. 목소리가 갑자기 끊어졌다.



"정말 안 됩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제가 아씨께 여쭤보러 갈 테니, 아 그러면 안——"



꽃무늬가 조각된 나무문이 삐걱대면서 열렸고, 박달나무로 조각되어 만들어진 부채 하나가 얇은 휘장을 걷어 올리자 한 쌍의 요염하고도 아름다운 눈이 드러났다. 초명윤은 멀리 탁상 옆에 앉은 소세예를 힐끗 바라봤는데, 입가엔 점점 미소가 번지고 있는 채였다.



"왜 이리 나를 막느냐고 말했건만, 원래 귀빈이 계셨던 거로구나."



난처하다는 듯이 그의 옆에 있던 기루의 여주인은 두려워하면서 시야에 들어온 이들 중 여자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닿은 정주가 웃고는 입을 열었다.



"이 공자께서 이미 오신 바에야, 다른 사람을 언짢게 하지 말고 가 보거라."



기루의 여주인은 대사면을 받은 듯이 재빨리 떠났다. 정주는 말을 고르고는 웃음 띤 얼굴로 초명윤에게 완곡하면서도 함축적으로 물었다.



"공자께서는 저를 찾아오실 만한 일이 있으십니까?"



초명윤은 웃으면서 그녀를 힐끗 보고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로 곧장 지나쳐 소세예에게 걸어갔다.



"제가 전에 당신께 인연이 있다고 말했는데, 아직도 저를 믿지 않으시는군요."



소세예는 약간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이 어떻게 이곳에 있는 겁니까?"



정말 사람은 어디서 만날지 모를 일이다[각주:3].

법률에 따르면 조정의 관리들은 가무와 여색을 즐길 수 있는 장소에 출입해서는 안 된다. 지금 조정에 있는 주요 인물이 두 분이나 이곳에 모였으니, 이 기루는 열렬한 인기를 얻을 것이 아니라 헐려버릴 것이 분명했다.



"제가 여기에 왔다는 건, 당연히——"



팔을 소세예의 어깨에 걸친 초명윤이 몸을 약간 기울이고는 입가를 깨물면서 아름다운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간통하는 것을 잡으러 온 거겠죠."



소세예는 거북하다는 듯 몸을 일으켜 몇 걸음 뒤로 물러나고는 냉담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농담을 하시는군요."



그 덕에 초명윤의 팔은 허공으로 떨어졌다. 여유 있게 소매를 정돈한 그는, 놀란 건지 의아해하는 건지 확실치 않은 표정을 한 소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 꼬맹이가 진사항입니까?"



그가 이 말을 뱉자, 소세예와 서로 시선이 마주쳤다. 둘 다 진작에 진현문을 호송한 사람이 보고한 소식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한 번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는 건 피차일반이었다.

정주도 곧 웃더니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이 공자분도 사람을 찾으러 오셨나 보군요. 서로 아는 사이셨다니 앉아서 차 한잔 마시지시요."



그 둘은 자리에 앉았고, 소세예는 진사항을 안정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괜찮아, 방금 하려던 말을 계속하렴. 네 부친께서 그 사람을 뭐라고 불렀다고 했지?"

"전⋯⋯."



진사항이 입을 열었으나 정주의 손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 갑자기 흠칫한 그가 두려운 듯이 불안해하며 앞에 있는 두 남자를 바라보면서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왜 그러니, 아직도 무서워?"



정주가 몸을 숙여 그를 가볍게 끌어안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이 두 분께서는 널 도와주려 온 거야. 너를 해치지 않으니, 두려워할 필요 없어."



진사항은 그녀의 소매를 붙잡고 입을 악물며 더 이상 말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쉰 정주는 눈을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공자께서 모르고 계신 것이 있습니다. 그날 이후에 이 아이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는 않아서 기겁을 하기 일쑤랍니다. 아마도 방금 또 놀란 것 같네요."



초명윤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리 말씀하시는 함은, 제가 때를 잘못 맞춰서 왔다고 탓하시는 겁니까?"

"별말씀을 다 하시는군요."



정주가 웃음을 지었다.



"제가 우선 이 아이를 조용한 뒤쪽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조금 기다린 다음에 공자께서 질문하셔도 될까요?"



소세예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낭자를 번거롭게 하는군요."

"두 분께 양해를 구합니다."



허리를 굽히며 인사한 정주는 진사항을 이끌고 안쪽에 있는 방으로 갔는데, 빨간색과 파란색이 칠해진 병풍 뒤로 인영이 가려졌다.

소세예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초명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당신이 진현문에 대한 일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직접 이런 곳까지 오시다니 의외로군요."

"피차일반이죠."



초명윤은 느릿하게 이어 말했다.



"저도 당신을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이리 공적인 일을 원칙대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감탄이 나오는군요."

"본래 올바른 일을 한 것뿐인데, 제 이 모습에 잘못한 거라도 있습니까?"



초명윤은 눈을 지그시 감아 웃었다.



"여기가 무슨 올바른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의 이 모습은 당연히 아주 이상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무슨 고견을 가지고 계시는 겁니까? 그 설명을 듣고 싶군요."



소세예가 말했다.

입꼬리를 올린 초명윤이 다소 사람을 미혹하려는 듯이 목소리를 낮춘 채로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알고 싶습니까? 그럼, 아무도 없는 방을 찾으러 가죠, 제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어리둥절해진 소세예가 한동안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는 옆에 서 있는 시중을 드는 하녀가 귓불을 빨갛게 물들이는 것을 곁눈질로 보고 나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침묵한 후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



"진현문은 일개 평민으로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왜 아직도 이렇게 그분의 일에 관심을 가지시는 겁니까?"



정말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나 딱딱하게 화제를 돌리는 건 또 처음 본다.

초명윤은 흥미가 식은 듯 시선을 거두었고, 대답을 했다.



"진현문께서는 필경 제게 은혜를 베푸셨는데도 그분을 보호하지 못했으니, 그분의 손자라도 좀 봐야겠습니다."



그의 대답은 소세예에게 조금 뜻밖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무언가를 물어볼 시간이 없었다. 정주가 이미 진사항을 이끌고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꼬맹이, 확실하게 생각이 난 거야?"



초명윤이 물었다.

진사항은 눈을 늘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저⋯⋯ 기억이 났어요."

"부친께서는, 그, 그분께서는⋯⋯ 그 사람을 이렇게 부른 것 같아요. 왕야[각주:4], 라고."



한 글자 한 글자가 목에 걸리는 듯 부자연스러웠다.

소세예는 눈빛이 조금 가라앉은 채로 말을 하지 않았다.

초명윤과 소세예는 또 몇 가지를 물어보았고, 진사항은 우물쭈물하며 어수선하게 말의 앞뒤가 뒤바뀐 대답을 내놓았다. 당시에 정말 혼란스러웠기도 했고, 그의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아는 것이 많지 않은 것 같았다. 다시 물어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니 이렇게 계속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 두 사람이 몸을 일으켜 떠나려고 할 때, 그곳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진사항을 본 초명윤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아직도 따라오지 않는다니, 넌 여기서 사는 게 아주 즐거운가 보지?"



진사항이 물러나 정주의 뒤에 섰다. 정주도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나오게 하려고 타일렀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지 않았다. 종잇장처럼 창백한 얼굴이었으나 태도엔 며칠 동안 좀처럼 보지 못했던 고집이 담겨 있었다.

소세예가 가볍게 웃고는 말했다.



"이 애가 낭자를 아주 신뢰하는군요. 떠나기를 원치 않는 이상, 저희도 강요하기 어렵겠습니다."



그는 정주를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낭자께 며칠 동안 또 폐를 끼쳐야 할 것 같습니다."



의아해 보였던 정주는 곧 정신을 차리고 바삐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공자께서 부탁하시기도 했고, 기왕 이렇게 되기도 했으니⋯⋯ 그럼 제가 대신 보살피고 있겠습니다."



초명윤이 의미심장하게 이 두 사람을 흘끗 바라보더니, 냉소를 내뱉곤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갔다.



"초 대인."



홍수초로부터 멀리 떠나지 않았을 때, 소세예가 뒤에서 그를 불렀다.



"앞쪽에 찻집이 있는데, 초 대인께서 저와 차를 한 잔 마실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초명윤은 허둥거리지 않고 여유 있게 몸을 돌렸다.



"아까 마셨지 않았습니까?"

"⋯⋯."

"허."



초명윤이 웃고는 이어 말했다.



"갑시다."



그 두 사람은 찻집에 가서 아늑한 위치를 찾아 앉았다. 초명윤이 턱을 괸 채로 찻잔을 조금 밀어내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없으니 할 말이 있으면 그냥 말하십시오, 아무튼 전 안 마실 겁니다."



소세예가 담담히 웃고는 아주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초 대인께서는 그 애가 말한 일들을 믿습니까?"

"진사항이 이 사람인 것은 확실하지만, 말이 일관적이지가 않았습니다."

"보아하니 우리의 생각이 똑같은 것 같군요. 또 정주 낭자의 거동이 조금 이상하길래 문득 생각이 난 것이 있는데, 만약 가능하다면 지하 감옥의 그날처럼 초 대인과 한 번 더 손을 잡고 싶습니다."

"아——?"



초명윤이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분명 그 여자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면서도 진사항을 저기에 머무르게 한 겁니까?"

"그렇게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고도, 설마 초 대인은 정말로 그 애를 억지로 데리고 오려고 하셨습니까?"



소세예가 말을 이었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수도의 한복판인 데다가, 그 정주 낭자는 우리가 주시하고 있다는 걸 알 테니 감히 그 애한테 손을 대지는 않을 테지요.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초명윤은 이런저런 말이 없는 채로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무얼 하려고 저를 끌어들이려는 건지요?"



소세예는 손끝으로 찻잔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초 대인도 내심 당연히 알고 계시겠죠, 이 수도의 정세를 휘저으려고 터무니없는 그림을 그리는 이가 있습니다. 비록 당신과 저의 관계가 화목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외적을 상대해야 한다면 맹우[각주:5]로 삼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당신을 이렇게나 다정히 대하는데, 어떻게 아직도 당신과 저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느끼시는 겁니까. 정말 제 마음에 상처가 되는군요."



초명윤은 약하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초 대인."



소세예가 그를 바라보았다.



"⋯⋯ 말하십시오."



시선을 거둬들인 소세예가 더는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경조부윤이 예전부터 줄곧 한 집안 수하에 있는 지하 도박장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주 깊숙이 숨겨져 있어서, 아직 어떠한 비밀도 조사해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요 며칠 진사항을 찾으면서 의외인 것을 발견했는데, 바로 홍수초와 그 집안의 도박장 사이에 다소 왕래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약간 사색에 잠긴 초명윤이 점점 더 깊은 웃음을 지었다.



"기루 안에서는 오고 가는 소식을 들으며 정보를 수집하고, 도박장 안에서는 금전의 흐름을 거두어들여서 재물을 모아 둔다라. 정말 한 사람이 배후에서 조종한 거라면, 주판 튕기는 솜씨가 제법 보통이 아니군요."



소세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 대인께서는 저랑 같이 방문해 볼 의향이 있으십니까?"



초명윤이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기꺼이 가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말:

매번 댓글이나 즐겨찾기를 볼 때마다 조금씩 늘어나 있어서 정말 기뻐요. 여러분이 제 이야기를 봐 준다는 걸 알게 되니 정말 기분이 끝내주네요.

감사합니다=v=
  1. 장(丈)은 길이 단위로, 1척(尺)의 10배를 뜻한다. 1장은 약 3.33미터이다. [본문으로]
  2. 홍수초(紅袖招)는 아름다운 여자(紅袖)가 손짓(招)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선 여자들이 가득한 기루의 이름을 뜻하는 단어로 보인다. 당나라 시인 위장(韋莊)의 보살만(菩薩蠻)이라는 시에서 화자가 자신의 풍류 있던 젊은 나날을 추억하며 쓴 말에서 나온 표현이다. 

     

    騎馬倚斜橋,

    滿樓紅袖招。


    말을 타고 다리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으니
    누대에서 아름다운 여인들이 손짓을 하네. [본문으로]

  3. 人生何處不相逢. 중국의 속담으로, 사람은 어디서라도 꼭 다시 만나게 되며 어디에서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뒷날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 있다. [본문으로]
  4. 왕야(王爺)란, 왕의 작위를 받은 사람에 대한 존칭이다. [본문으로]
  5. 맹우(盟友)란 맹약(盟約)을 맺은 벗을 뜻하며, 외교적인 상황에서는 동맹국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