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강하게 저항해도 소용없습니다, 당신들은 승산이 조금도 없으니까요.
모든 것이 한순간에 벌어졌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모 지배인은 폭발한 듯이 소리쳤다.
"빨리 안 들어오느냐!"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한 무리의 흑의인이 문을 부수고 들어왔고, 이에 반응하듯 일제히 몸을 돌린 붉은 옷의 무희들도 옆에 놓여있던 거문고와 비파 안에서 연검을 뽑아 들고 초명윤의 곁으로 바싹 접근했다.
조용히 발걸음을 몇 보 정도 뒤로 옮긴 소세예가 손을 들어 손안에 있던 찻잔을 던졌다.
매우 뜨거운 찻물이 정면으로 뿌려지자 맨 앞에 있던 흑의인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기울여 피했다. 이윽고 눈앞에 그림자가 순식간에 지나갔는데, 바로 남색 옷을 입은 남자가 몸을 재빠르게 옆으로 돌린 것이었다. 흑의인은 손목이 아파짐과 동시에 장검을 빼앗겼다. 이어 자기 잔이 무릎뼈를 때리자 그 힘에 그는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었고, 뒤에 있던 사람들은 걸음이 막혀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초명윤은 또다시 손에 쥔 장검을 휘둘러서, 공중에 흩뿌려진 물방울을 가르며 곧바로 모 지배인의 인후를 공격했다.
모 지배인의 반응도 빨랐다. 그는 닥치는 대로 탁자를 잡아 올려 내던지면서 빠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초명윤은 피하지도 않은 채로 두꺼운 탁자를 부수어 쪼개었는데, 손안의 장검은 폭풍 못지않았다. 큰 소리가 무겁게 울려 퍼지며 원탁이 여러 갈래로 폭파되자 나무 부스러기가 사방으로 흩날렸기에 계속 주위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흑의인들은 대부분 초명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 편에서는 소세예가 재빠른 몸놀림으로 몸에 달려드는 칼날을 엇갈리게 만든 뒤, 손 가는 대로 그중 한 명을 잡아당겨서 밀쳤다. 밀쳐진 사람의 뒤에서 시퍼런 칼날이 가슴을 뚫고 나왔고 한바탕 혼란스럽게 충돌이 일어났다. 그는 잠시 틈이 나자, 고개를 돌려 초명윤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고 살짝 멍해졌다.
몇 수만에 바로 열세가 훤히 드러난 모 지배인은 초명윤을 에워싼 수하가 있어야 한숨 돌릴 여지가 생겼다. 초명윤은 타인의 기습에 너무 한눈을 팔지는 않았지만, 때때로 몇 수로 방해가 되는 것들을 뒤흔들며 쓸어버렸다. 그는 이미 붉은 띠를 풀어낸 채로 모 지배인을 노려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더 바짝 다가갔고 그 기세가 사람으로 하여금 압박을 느끼게 했다.
돌연 소세예는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것을 똑똑히 알아보았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본래 장군이었다. 마치 국경 밖 전장의 위에서, 그가 천만 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말을 채찍질하며 질주하고, 적진을 격파해 적을 무찌르고, 장수를 베어 총사령관의 자리를 쟁취한 자태를 떠올려 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초명윤의 미목(眉目)은 본래 곱고 아름다운 데다 또 평소에는 항상 있는 듯 없는 듯한 웃음기를 띄기에 늘 요사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색채를 띠었다. 이 때문에 조정의 기골이 강경한 노신(老臣)들은 그를 허다히 경멸하고 우습게 여겼다. 지금, 그의 얼굴에는 한 치의 웃음기라고는 없었고 날카로운 눈빛에다가 살짝 다문 입술 선에 냉담함이 그려졌으며, 온몸에는 감춰지지 않은 흉악한 기운이 낱낱이 드러났다.
이 세상에는 과연 살벌(殺伐)의 미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모든 동작 하나하나에 피비린내가 젖어있는 이런 종류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놀라게 하고 넋을 뒤흔들게 했다.
——소가(蘇家) 4대에 너라는 장군은 없어도 된다.
소세예는 속으로 전율했으나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넋을 잃은 순간에 공교롭게도 옆에서 칼이 습격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가 급히 고개를 돌리고 몸을 살짝 뒤로 젖히자 칼날이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손을 뻗어 상대방의 손목을 잡은 그가 곧게 몸을 일으키더니, 손쉽게 상대방을 칼에 세찬 힘으로 꽂아버리자 핏빛이 사방으로 튀었다.
저쪽의 모 지배인은 마침내 기력이 다했다. 그의 손에서 놓친 무기는 몇 척이나 멀리 내팽개쳐졌지만, 이미 휘둘러진 초명윤의 장검이 정면을 찔러오고 있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숨을 헐떡인 그는 급히 두 팔로 앞을 막았고, 피와 뼈가 일격을 생생히 부딪치자 곧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초명윤은 아예 손에서 검을 놓아버린 다음, 번개처럼 빠르게 내질러 그의 명치를 정통으로 급습했다. 흑의인의 무기가 쉴 새 없이 떨어지자 재빨리 초명윤의 몸이 엇갈리게 피했다. 그에 따라 손도 미미하게 옆으로 움직였고, 손 아래에 있는 몸이 맹렬하게 떨렸으며 늑골이 몇 가닥이나 끊어졌는지 모를 정도였다. 모 지배인은 기침하며 피를 내뱉더니 낭패한 모습으로 창문 앞으로 후퇴했다. 밖을 흘끗 본 그가 벌써 바싹 다가온 초명윤을 바라보면서 이를 악물고 창문 너머로 몸을 날렸다.
돌연 초명윤은 제 뜻대로 두지 않으려 모 지배인의 옷섶을 움켜잡았지만 그에게 맹렬하게 뿌리쳐졌다. 혼란 속에 모 지배인의 품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낸 것 같았는데, 초명윤이 그것을 자세히 보기도 전에 상대방은 이미 서둘러 아래로 떨어졌고 인영이 눈 깜짝할 새에 누각 밖의 우거진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몸을 돌린 초명윤은 곁눈질로 뒤쪽을 매섭게 쓸어보았다. 흑의인과 무희들은 절반 넘게 상처를 입어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주인은 발을 빼고 떠나버렸으니, 한순간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나고는 그를 경계하듯이 주시하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몰라 했다.
돌연 창밖에서 말굽이 낙엽을 밟는 세찬 소리가 멀리서 울려 퍼졌다. 눈동자를 돌린 초명윤은 불빛 한 줄기가 저 멀리 산봉우리와 무성한 숲을 건너 이곳으로 밀려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그의 표정이 조금 미세하게 부드러워지더니 웃음기를 띈 채로 소세예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보배야——"
몸 주변을 이미 깨끗하게 정돈하고, 조그마한 핏방울도 흰옷에 묻히지 않은 소세예가 그를 짧게 쏘아보았다.
"크흠—— 소 대인."
초명윤이 말을 바로잡았다.
"형부의 사람들이 그럭저럭 때맞추어 달려왔군요."
손에 횃불을 들고 말고삐를 늦춘 관병들이 점점 가까워지자,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창밖에서 똑똑히 보였다. 소세예는 눈빛을 거둬들이곤 아직도 서 있는 방 안의 사람들에게 조금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완강하게 저항해도 소용없습니다, 당신들은 승산이 조금도 없으니까요."
사람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망설이다가 결국 무기를 내려놓았다.
곧 영락방을 물샐틈없이 에워싼 관병들이 층마다 수색하여 누각에 있던 사람들을 형부로 압송하고는 심문하기를 기다렸다. 잠시 바라보던 초명윤은 별일이 없음을 느끼고는 손에 움켜쥔 물건을 불빛에 비추어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것은 어느 서수(瑞獸)의 윤곽이 선명하게 주조된 동부였다. 초명윤은 손에 들고 한참 동안 감상했지만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알아맞힐 수가 없었다. 1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소세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숲 속은 이미 수색했습니다. 몇 군데에 핏자국이 있었긴 하지만, 그 모 지배인은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동부를 품에 넣은 초명윤이 몸을 돌리며 전혀 아랑곳하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찾지 못해도 무방합니다. 나에게 중상을 입었으니 죽지 못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일단 그 하인들이나 취조해 보지요."
소세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은 정말 초 대인께 폐를 끼쳤습니다. 제가 육 상서 대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군요."
초명윤은 아무렇게나 손을 흔들며 말했다.
"감사하다는 말은 됐고, 저를 산 채로 껍질을 벗길 것 같이 노려보지 말라고 하시기만 해도 족합니다."
소세예는 담담히 웃음을 지을 뿐 대화를 이어 나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초명윤이 홀연 말했다.
"당신은 이미 모 지배인을 알아채지 않았습니까?"
소세예는 가볍게 고개를 젓더니 웃으며 말했다.
"제가 정말 누군지 알아봤다면 당신과 함께 연극을 할 필요도 없었겠죠. 사람을 시켜 숲속을 찾아다닐 필요는 더더욱 없었을 겁니다."
"오?"
초명윤이 의아하다는 듯이 이어 말했다.
"이렇게 말하시는 함은, 그 말이 다 거짓이었다는 겁니까?"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소세예가 이어 말했다.
"어렴풋이 친숙하게 느껴진 건 사실이지만, 도대체 누구인지는 생각나지 않아요. 그다음에 한 말은 거짓말로 떠봐서 스스로 상황을 흐트러뜨릴 수 있을지 없을지 보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소 대인은 그 사람이 당신을 형장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신 겁니까?"
소세예는 의아하다는 듯이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초 대인께서는 설마 그 애가 저보다 조금 어리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신 겁니까?"
"⋯⋯ 알아봤습니다."
동이 환히 트는 밤하늘 속에서 별안간 새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은 깃털의 새가 공중에서 급강하하더니 초명윤이 들어 올린 팔뚝 위에 내려앉아, 난감한 상황으로 흘러가려던 것을 구해 냈다.
초명윤은 편지지를 뜯더니 입가에 천천히 웃음을 자아내고는 고개를 돌려 소세예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이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할 만하군요."
"몰래 장안성을 빠져나가려는 사람이 이쪽으로 온 것 같습니다. 소 대인, 당신과 저는 지금 돌아가는 길이니 때마침 마주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벽이 희끗희끗 밝아오고 산속에는 운무가 옅게 깔린 와중, 한 마차가 장안을 쏜살같이 빠져나가더니 관도를 벗어나 곧바로 숲속으로 들어갔다. 2
안색이 굳은 채로 마차 벽에 기대 있는 정주는 멍하니 정신이 나가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따름이었다. 정주 옆에 딱 붙어 앉아 있던 진사항은 조용히 마차 창문에 걸린 휘장을 걷어 올려 쏜살같이 스쳐 지나가는 울창한 숲을 잠깐 보다가, 도로 시선을 거두기를 한참 동안 반복했다. 결국 참지 못한 그는 옆 사람의 소매를 잡아끌면서 의기소침하게 말했다.
"⋯⋯ 정주 누나."
진사항이 연이어 몇 번이나 부른 다음에야 정주는 차츰 정신을 차렸고, 가까스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었다.
"왜 그러니?"
진사항은 걱정이 태산 같다는 듯이 정주를 보았다.
"왜 밤새 성을 빠져나가야 하는 거죠, 무슨 일이 일어나서 그런 거예요?"
"맞아."
정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무슨 큰일이 난 건 아니고, 조금 작은 사고가 있었을 거야. 전에 항상 날 찾아오던 그 형 기억하니? 그 사람을 보러 가는 거란다."
그럼에도 고개를 숙인 진사항은 손에 자신도 모르게 자기 옷소매를 꽉 쥐며 낮게 말했다.
"하지만 난⋯⋯ 정말 무서워요⋯⋯."
매우 놀란 정주는 진사항이 느릿느릿 말하는 것만이 귀에 들어왔다.
"그날 밤도⋯⋯ 이랬던 거 같아요. 모두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그랬는데, 그랬는데도 사라졌어⋯⋯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그는 또다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머리를 파묻었으나, 그 몸은 실로 여위고 허약해 더 이상 어떤 중압도 견뎌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 아이는 그녀를 몹시도 믿고 의지하고 있기에, 정주가 비록 마음을 다시 독하게 먹었다 할지라도 이 순간만큼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정주는 잠시 망설이다가 소매 속에 감춘 비수를 그에게 주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서워할 필요 없어."
진사항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정말 눈가가 빨갰다.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방긋 웃은 정주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말했다.
"너에게 칼이 있다는 건 힘이 있다는 거야. 또다시 무서워질 때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잖아."
입을 연 진사항이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갑자기 바깥에서 귀를 찌르는 말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마차가 돌연 멈추었다. 정주는 재빨리 넘어지지 않게 진사항을 끌어안았고 잠시 몸이 흔들리지 않을 때야 그를 놓아주었다. 그녀가 창문에 걸린 휘장을 걷어올리며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뭔 일 있어요?"
뜻밖에도 마부는 이미 도망갔으며 깊은 밤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서 말에서 내린 두 사람을 바라보았는데, 흰옷을 입은 이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또 만났군요, 정주 낭자."
정주는 마음이 움칫했지만, 얼굴에는 웃음을 띤 채로 진사항을 이끌며 마차에서 내렸다.
"정말 공교롭군요, 두 공자께서 어찌 여기에 계시는 겁니까?"
"방금 사건 하나를 다 해결하고 성으로 돌아가던 참이었습니다."
소세예가 이어 말했다.
"낭자께서는 왜 이 시간에 여기에 나타나신 겁니까?"
"전⋯⋯."
"두 사람은 이렇게 빙빙 돌려서 말하면 피곤하지도 않습니까?"
차갑게 끼어들어 말참견을 한 초명윤은 한 걸음 더 가까이 걸어가더니 정주에게 직접 그 동부를 반짝반짝하게 보여주면서 물었다.
"이게 뭔지 알고 있지?"
정주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게⋯⋯ 어떻게 당신 손에 있을 수 있죠?"
초명윤은 팔을 거두어 물건을 바라보더니, 그녀에게 눈을 휘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 생각은 어떤데?"
"당신⋯⋯."
"당연히 주인이 죽었으니까 내가 그 품에서 가져온 거 아니겠어."
몸을 떨던 정주는 중얼거렸다.
"죽었다? ⋯⋯ 죽었다고?"
그녀는 머릿속이 삽시간에 공백이 된 채로 마치 매우 곤혹스럽고 실의에 빠진 듯이 사방을 둘러보다가 맨 마지막 시선을 어렵사리 초명윤에게로 떨어뜨렸다. 눈빛에 갑자기 원한이 채워진 정주는 옆에 있던 진사항을 밀어젖히더니 마치 번개처럼 빠르고 맹렬하게 그를 향해 돌진했다.
"죽여 버리겠어——!"
목소리가 날카롭고 스산한 것이 더는 부드럽지 않았다.
"저런,"
눈썹을 치켜세우고 웃은 초명윤은 미미하게 몸을 기울여 그녀를 가볍게 스쳐 지나가더니 손을 들어 저지하고는 그녀의 손목을 꽉 틀어쥐었다.
"실력은 나쁘지 않은데, 아깝게도—— 조금 느리네."
그는 정주를 잡은 손목을 돌려 밖으로 뿌리친 다음 곧바로 넘어뜨려서 몇 장 정도 멀리 떨어진 고목에 부딪히도록 했다.
정주는 발버둥 치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기침을 한 순간 온몸의 뼈가 산산조각 난 것 같은 고통에 결국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초명윤이 느릿하게 말했다.
"일어나지 못하겠으면 순순히 누워 있는 채로 내 질문에 대답해."
그는 손안에 있는 동부를 들어 올렸다.
"이건 뭐 할 때 쓰는 거지?"
정주는 그를 응시하면서 가볍게 흥, 하고 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입안에 밀어 넣었다.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린 순간 소세예가 바로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팔을 잡고선 아래로 내려 저지했으나, 결국 한 걸음 늦어 버렸다. 아주 도발하듯이 소세예와 마주 본 정주는 흰 목을 살짝 움직이면서 물건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소세예는 가볍게 한숨 쉬며 그녀를 놓아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낭자께서 이리도 단호하실 필요가 있었을까요, 우리는 당신을 죽이려는 의도가 추호도 없었습니다."
양손을 땅에 짚은 정주는 갑자기 차츰 웃음을 내뱉었다. 그 웃음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는데, 조금 통쾌하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았다.
"소주⋯⋯."
그녀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정주가 무능하니, 당⋯⋯ 당신께서는 잠시만 저를 기다려 주십시오."
그녀의 몸이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입가에서 붉은색 한 줄기가 배어 나왔다. 눈동자가 이미 조금 풀어진 그녀는 죽음에 가까워진 듯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무언가를 속삭거렸다.
소세예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몸을 아래로 굽혔다. 오직 그녀의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말만이 들려왔다.
"⋯⋯ 정녀기주, 사아⋯⋯ 어성우. 애이⋯⋯ 애이⋯⋯ 불견⋯⋯ 소수지주⋯⋯." 3
"너는 이름이 뭐니?"
"소주께 아뢰되, 속하의 신분이 비천하여 이름을 가질 자격이 없습니다. 다만 순번에 따라 십칠이라고 불릴 뿐입니다."
"아가씨를 이렇게 부르는 게 어디 있어. 내가 생각해 볼땐—— 정녀기주, 너는 부친께서 나를 보좌하라고 보낸 이지. 그럼 내 말을 들어, 정주라고 바꿔 부르는 게 어때?"
"정녀⋯⋯ 기⋯⋯."
갑자기 입안 가득 피를 뱉은 정주는 힘을 잃고 몸을 거꾸러뜨리고는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 짙고 검붉은 피가 공중으로 솟아올라 진사항의 넋 없는 시야 속에 들어오자, 불과 피가 서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밤 속으로 그가 끌어당겨졌다. 깜짝 놀라 오싹해진 그는 마침내 한바탕 꿈속에서 깨어난 것만 같았다.
소세예는 몸을 곧게 일으켰다.
"보아하니 죽을 각오의 마음을 가지고 온 것 같습니다."
초명윤은 의미 불명의 가벼운 웃음소리를 내고는 동부를 거둬들였다.
소세예는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안색이 갑자기 미미하게 변했다.
"뒤를 조심하십시오!"
줄곧 멍하니 옆에 서 있던 진사항이 돌연 목숨을 건 듯이 초명윤에게 달려들었다. 손안에는 비수를 쥐고, 모든 나약함을 벗어 던진 모습이 마치 작은 늑대처럼 사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