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잘됐네, 이젠 이야기가 한 마디도 나오질 않아
그들은 두 사람이 문을 나서는 그 순간, 약속이나 한 듯이 초명윤과 소세예가 상가에 징수하는 국도 관리 세금 같은 오래된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멈췄으며, 자신들이 분쟁에 대해 마음을 졸일 처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몰랐다.
두 마리의 커다란 여우가 서로 마주 보며 웃었고, 소세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초 대인께서 이러시는 뜻이 무엇인지요?"
"뭘 말입니까?"
초명윤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아월이 길에서, 이번에 수도에 온 것은 친구가 있는 곳으로 일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초 대인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초명윤이 느릿하게 말했다.
"두월이 소 대인을 사사로이 만난다는 것을 빨리 알았더라면, 진작에 오라고 불렀을 겁니다."
소세예가 희미하게 웃으며, 조금 잠긴 목소리를 냈다.
"아월의 약리학에 대한 재능은 명석하니, 반드시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기에 옳고 그른 것과 선악을 분별해 낼 줄 모르기에 초 대인께서 곁에서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소 대인께서 저를 허락하셨으니, 저와 두월도 한 식구이지 않습니까. 그럼 응당 잘 돌봐 줘야지요."
초명윤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말장난은 그만두십시오."
소세예가 그를 바라보면서 계속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당신도 아월이 우리의 관계를 오해하도록 만들 생각이 없으십니다."
"그 말씀은 제가 두월에게 알리지 않는 것을 탓하시는 겁니까?"
초명윤이 다시 얼굴빛을 진지하게 바로잡고 말을 이었다.
"당신이 다시 부끄러워하며 도망갈까 봐 걱정되어 그리한 것 아닙니까? 이렇게 된 이상, 조금 있다가 두월이 돌아오면 제가 알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소세예가 눈을 내리깔고 가볍게 웃었다. 이어 그가 입을 열었는데, 어세가 여전히 평온하여 그가 어떤 기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초 대인께서는 제가 난처하다는 것을 외면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초명윤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찻잔을 들며 입을 열었다.
"저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분명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소세예는 차를 마시며 창밖의 등불을 걸어놓은 긴 거리로 눈길을 옮겼다.
정말 잘됐네, 이젠 이야기가 한 마디도 나오질 않아.
곧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소세예가 진소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두월에게로 눈길을 다시 옮기며 말했다.
"하늘도 어두워졌으니, 아월, 우리 돌아가자."
진소는 자신도 모르게 순간 두월의 팔을 붙잡고 소세예를 경계하며 바라보았다.
두월은 진소를 이상한 눈빛으로 한 번 보고는, 소세예에게 망연하게 말했다.
"표형, 그 말은 저랑 같이 돌아가시겠다는 거예요?"
"맞아."
소세예는 진소와 서로 시선이 마주쳤으나, 머릿속으로 조금 이해만 할 뿐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시선을 돌리며 계속 말했다.
"일을 찾고 싶다면 내가 대신 준비해 줘도 되는데, 초 대인을 번거롭게 할 필요가 있을까?"
"저는 번거롭지 않은데요."
초명윤은 웃는 표정을 짓고 소세예를 힐끗 보더니,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소 대인께서 저를 이렇게나 아끼시는 것은 무슨 목적에서입니까?"
소세예는 못 들은 채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월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이미 얘들과 이야기가 끝났는데, 말만 하고 책임을 지지 않을 수는 없죠."
그는 이 말을 하자마자 소세예의 기분이 안 좋아질 것이 걱정되어 재빨리 다른 말을 붙였다.
"저도 표형께 찾아가 놀고 싶어도, ⋯⋯ 제 어머니가 아시면 분명 온종일 표형을 번거롭게 했다고 욕하실 거예요."
소세예가 잠시 침묵하더니, 난처하다는 기색이 확연한 두월의 얼굴을 보고는 할 수 없이 낮게 웃으며 "알았어."라고 말했다. 그는 초명윤을 힐끗 보고는 두월에게 당부했다.
"하지만 만약 고충이라도 있다면, 얼마든지 나를 찾아 와." 1
"두월에게 고충이 있다면 진소가 분명 바로 도와줄 것이니, 아마 소 대인께까지 수고가 미치진 않을 겁니다."
초명윤이 느릿하게 말했다.
"⋯⋯."
소세예가 몸을 돌려 초명윤을 바라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초 대인께서 계시니 제 마음도 자연히 놓입니다. 이렇게 되었으니 소 모는 먼저 가봐야겠군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초명윤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내일 보지요."
소세예는 전혀 동요 없이 대답했다.
어사대부의 정력이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얼마나 비상한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2
태위부 안의 약려 구석구석에 배치된 장식품들은 진소가 손수 둔 것이었는데, 두월은 아주 기쁜 얼굴로 한 바퀴를 돌더니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초명윤은 옆에서 잠시 팔짱을 끼고 바라보다가,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려 주원(主院)으로 돌아가려 했다. 두월이 그걸 보고 재빨리 쫓아왔는데, 초명윤이 걸으면 걷고 뛰면 같이 뛰면서 주청(主廳)까지 따라왔다. 3
초명윤은 머리를 돌려 자기를 따라오는 두월을 보다가, 두월을 따라오는 진소를 보더니 짜증 내며 말했다.
"왜?"
"너희 두 사람에게 알려야 할 일이 있어."
두월이 말했다.
뜻밖에도 진소가 입을 열었다.
"뭔데?"
두월은 오랫동안 망설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백리(百里) 사부도 세상을 떠나셨어. 내 스승께서 장례를 치르신 그날에 말이야."
초명윤은 좀 멍해져서 우두커니 있더니, 진소가 흐리멍덩하게 얼이 빠진 모습을 보고는 몸을 돌려 앉았다.
"응, 그리고 또."
"백리 사부께서 나에게 두 스승님을 같이 합장(合葬)시켜 달라고 했는데, 너희들에게 돌아갈 때 굳이 알릴 필요는 없다고 하시더라. 하지만 이 한 마디는 너한테 전해달라고 하셨어."
두월은 초명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초명윤은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괴고 눈을 아래로 늘어뜨리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나직하게 대답했다.
"음?"
두월은 잠시 망설였다. 그늘에 가려진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는데, 오직 한 자, 또 한 자를 신중하게 토해내는 목소리만이 뚜렷하게 들려 왔다.
"그분께서 너에게, 스스로 잘 알아서 조처하라고 말씀하셨어." 4
초명윤이 눈을 감고 가벼운 웃음을 짧게 내더니, 말을 하지 않았다.
두월은 조금 어쩔 줄 몰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단지 전하기만 했을 뿐, 그 말속의 뜻을 깨닫지 못했고 초명윤의 이런 반응을 직면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진소가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는 두월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온화하게 들리도록 시도하면서 말했다.
"창오산에 너 한 사람만 있었어?"
그 말을 듣자 두월의 마음이 텁텁해졌고, 억지로 참아 왔던 흐느낌을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려 노력하며 말했다.
"백리 사부께서는 시끄러운 걸 싫어하셔. 나도 산에 다른 사람이 오르는 걸 원치 않아."
진소는 그의 머리를 토닥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잘했어."
머리에 닿은 따뜻한 감촉에, 두월은 눈가를 문지르며 눈물을 흘리려는 것을 참고서 웃으려 노력하며 말했다.
"사부께서는 오동나무를 좋아하셨으니, 무덤 옆에 한 그루를 심었어. 이러면 우리 셋이 모두 없어도 그분들께 비바람을 막아줄 수 있을 거야."
진소는 고개를 숙여 그를 바라보았는데, 눈빛 속엔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일말의 온유함이 번졌다. 그걸 두월은 보지 못했지만, 문득 초명윤이 한참 동안 조용히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허둥지둥 이야깃거리를 찾았다.
"아, 맞다—— 초 씨. 어이, 너 부른 거 맞아. 혹시 너 우리 표형이랑 관계가 별로야?"
그는 어쨌든 바보가 아니었으므로, 나갔다 돌아온 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초명윤이 어쩔 수 없이 눈을 반쯤 뜨고는 말했다.
"그랬나? 나는 꽤 좋다고 생각했는데."
두월은 문득 진소의 의미 모를 질문을 떠올리고는 떠보며 말했다.
"너랑 우리 표형은 신분이 조금 어울리지 않나 보지?"
초명운이 낮게 웃더니 두월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정말 그렇다면⋯⋯,"
두월이 얼굴에 갈등하는 기색이 만연한 채로 말을 이었다.
"너희 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형제고, 우리 표형은 내가 어릴 때부터 다 클 때까지 키워 주셨어. 난 고를 수가 없어. 설령 서로 싸우기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꼭 양쪽을 다 구할 거야⋯⋯."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두월은 보기 드물게 난감해져서, 명쾌하게 말하려던 것을 포기했다.
"난 약려를 좀 더 둘러보러 갈게!"
그는 이렇게 말을 끝내고는 몸을 돌려 도망갔다.
청(廳) 안이 철저히 침묵으로 덮혔다. 진소는 사라져가는 두월의 뒷모습을 멀리 바라보고 나서야, 고개를 돌리고는 물었다.
"사형, 그럼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소세예와 맞서야 합니까?"
"왜 그러지 않아야 하지?"
초명운이 도리어 묻기 시작했다.
"친척 관계가, 방해될 수 있을 만한 가치가 있나?"
"하지만 두월은⋯⋯."
"소세예의 목숨을 죽지 않을 정도로 남겨 두고, 두월에게 미안할 게 없으면 되잖아."
초명윤의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 차가웠다.
"나에게 포기하라고 권하려는 건 아니겠지?"
진소는 침묵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두월보다 좀 더 많긴 했으나, 사부와 사형의 수수께끼 같은 대화는 그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진소는 여러 해 동안 초명윤과 알고 지냈지만, 여전히 그의 생각을 알아맞추지 못할 때가 허다했다. 지금도 초명윤이 정상이 아닌 것을 알아볼 수는 있었지만, 그의 마음이 왜 그런지를 모르니 위로할 길이 없었다.
"사형⋯⋯."
"아까 두월이 뭐라고 말했는지 들었어?"
초명윤이 갑자기 말했다.
진소는 걱정하면서 그를 한 번 봤다. 그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를 몰라, 할 수 없이 평범하게 대답했다.
"들었습니다."
초명윤이 손을 내려놓고 말했다.
"'너희 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형제'라고 했어. 너는 두월의 가장 좋아하는 형제지."
초명윤은 차마 진소를 직시하지 못하며 말을 이었다.
"두월의 좋은 형제야, 대체 언제 그 바보 친구에게 형제가 되고 싶지 않다는 걸 알려줄 생각이야?"
"⋯⋯."
진소는 이런 문제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눈을 아래로 깔고 조용하게 말했다.
"저는 두월에게 강박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 걸 알게 될 때가 되면 결정하라고 할 겁니다."
"그 띨띨한 애가 모든 걸 알 때까지 기다리면, 예상하건대 걔 아들이 너를 숙부라고 부르고 있을 거다."
진소가 몸 옆으로 늘어뜨린 손으로 갑자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잠시 멈칫했지만, 여전히 이렇게 말했다.
"저는 강요하지 싶지 않습니다."
초명윤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웃을락 말락 하며 말했다.
"넌 내가 방금 뭐라고 생각했는지 알아?"
"예?"
진소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굉장히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초명윤만이 보였다.
"너는 머리가 반쯤 비었고 두월은 머리가 텅텅 비었는데, 네가 생각하기에는 둘 중 누가 더 구제 불능일까?" 5
"⋯⋯."
그는 아까 왜 이런 사람을 걱정했을까? 진소는 몸을 돌려 가버렸는데, 그의 뒤에서 초명윤이 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진소의 인영이 사라지기까지 사방에서는 철저히 다른 사람의 기척이 조금도 들려오지 않았다. 초명윤의 웃음소리가 텅 빈 쓸쓸한 밤의 어두움 속에서 점점 약해지고 느려지다가, 끝내는 한숨 소리로 흩어졌다.
"⋯⋯ 스스로 잘 알아서 조처하라고?"
초명윤은 손을 펴서 자신의 손금을 보는 동시에, 눈을 들어 올려 세상의 끝없는 하늘에서 차갑고도 뾰족하게 반짝이는 것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여태까지 잘 알지 못한 적이 없었어."
작가의 말:
cp를 제대로 잡아야 단맛을 느낄 수 있어요.
초명윤x소세예
진소x두월 입니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세요, 나머지는 모두 형제간의 정입니다.
- 원문은 難處로, 애로나 고충을 뜻하기도 하지만 '함께하기 어렵다', '같이 있기 거북하다' 등 친분을 쌓기 어렵다는 뜻도 있다. [본문으로]
- 정력(定力)이란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고 마음을 한 곳에만 쏟는 힘을 뜻하며, 보통 자신의 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본문으로]
- 원문은 藥廬로, 약을 다루는 오두막집을 뜻한다. [본문으로]
- 원문은 好自爲之다. '스스로 알아서 잘 처리하라'라는 뜻인데, 충고나 경고할 때 쓰이는 성어이다. [본문으로]
- 원문에서는 초명윤이 진소에게는 '힘줄이 한 가닥만 있는 사람(一根筋的)'이라고 말하고 두월에게는 '힘줄이 모자란 사람(缺根筋的)'이라고 말한다. '힘줄이 모자라다(缺根筋)'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뇌를 거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을 하며,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때때로 반응이 느리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명윤이 볼 때는 진소와 두월 모두 '힘줄이 모자라'지만, 그래도 두월보다는 진소가 더 낫다는 의미로 진소에게 '힘줄이 한 가닥(一根筋)' 있다는 표현을 썼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