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대인은 당신과 제가 아주 잘 어울린다고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진사항의 그 기세 속에는 동귀어진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의 손안에 있는 비수가 날카로운 빛을 내며 매섭게 초명윤을 향해 떨어졌다.
고개를 돌린 초명윤은 그의 손을 식은 죽 먹듯이 내리쳐 그를 떨쳐버렸다. 땅에 세게 넘어진 진사항은 손에서 놓친 비수가 아주 먼 곳까지 내동댕이쳐졌음에도, 본체만체하고 몸을 일으키자마자 다시 급작스럽게 달려들었다. 두 손을 아무런 규칙 없이 되는대로 휘둘렀는데, 결국 고집스럽게도 초명윤의 머리끈을 잡아당겨 끊어버렸다. 까마귀처럼 검붉은 긴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양어깨에 풀어뜨려졌다.
"쯧."
인내심이 바닥난 초명윤은 그를 한 손으로 잡아서 땅에 넘어뜨리더니, 발을 들어 아직도 발버둥 치면서 기어올라 다시 돌진하려는 진사항의 어깨를 밟았다. 그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꼬맹이, 뭐하는 거지?"
초명윤이 그를 훑어보았다.
진사항은 시뻘겋게 뜬 눈으로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목소리를 냈다.
"네가 죽였어! 그녀를 죽였어!"
"허."
초명윤이 비웃었다.
"아직 다 크지도 않았는데, 벌써 예쁜 여인에게 눈이 멀어서 생각이라는 걸 못 하게 된 건가?"
"그 사람이 날 구해줬어! 그 사람뿐이었어!"
진사항은 이미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될 만큼 울고 있었다.
"자기가 조부의 동료라고, 나를 위해 움직이겠다고 했지만, 내가 집과 가족을 잃었을 때 너희들은 어디에 있었지? 그 사람 뿐이었어! 나를 불바다 속에서 꺼내준 이는 그 사람 뿐이었다고!"
"그 사람이 네 집과 가족에 손가락 하나 까딱 않았다고 한다면, 네가 어디에서 그 사람에게 구해졌을까?"
초명윤이 차갑게 말했다.
"헛소리야!"
진사항은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나야말로 너희들 말 안 믿어!"
소세예가 다가오더니 고개를 숙이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네가 정주 낭자가 너를 불바다 속에서 구해냈다고 말했지?"
"네!"
"그러면 홍수초 안에서 둘이 나에게 어떻게 말해줬는지 기억하고 있을까?"
소세예가 말했다.
진사항은 순간 아연해졌다.
소세예는 더 느릿느릿하게 말을 건넸다.
"그 사람은 네가 스스로 집에서 도망쳐 나오더니 자신의 마차 앞에서 기절했다고 말했지."
그가 눈동자를 늘어뜨린 채 진사항을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정주 낭자는 이상한 점이 있어. 너도 속으로는 분명히 잘 알고 있잖아, 그렇지?"
진사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애써 무시하고 이걸 회피하려는 건, 일단 진상이 드러나면 의지할 곳이 사라지기 때문이잖아?"
이 남자의 말하는 목소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는데, 내뱉어지는 한 글자 한 글자가 그가 잠시 쉬어가며 스스로와 남을 속여왔던 환상을 깨뜨려버렸다. 진사항은 전신에 힘이 빠진 것 같이 땅 위에 드러누웠고, 눈물이 창백한 뺨 위를 미끄러져 땅 위로 굴러떨어졌다.
초명윤은 눈만 아래로 굴려 그를 바라보면서, 갑자기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더, 우리가 언제 너 대신 움직여주겠다고 말했지?"
진사항은 눈을 뜨고 얼빠진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꼬맹이, 너 몇 살이야?"
초명윤이 물었다.
"열다섯."
"열다섯⋯⋯?"
초명윤이 미미하게 몸을 굽혀서 진사항과 시선을 마주 보았다. 흩어진 머리카락이 그의 표정을 가렸기에 소세예는 오직 그의 눈만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눈은 동틀 무렵의 하늘빛 속에서 아주 맑게 빛났다. 그의 목소리는 평탄하고 기복이 없었으며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열다섯이면 또 어때, 집과 가족을 잃은 그 순간부터 너는 아이가 아니야. 또다시 누군가에게 의지할 생각을 해서는 안 돼. 너 스스로 일어나야만 한다고. 가족의 피맺힌 원수를 네가 씻어내지 않고선, 아직도 너를 대신할 이를 기다릴 셈이야?"
"⋯⋯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진사항은 낮은 목소리로 오열하며 말했다.
"난 아무것도 몰라. 누구든 나를 손쉽게 죽일 수 있는데, 내가 어떻게 원수를 갚을 수 있겠냐고?"
"뭘 겸손하게 말하고 있지?"
초명윤은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등 뒤로 걷어 올리고는 차갑게 말했다.
"아까 나를 죽이고 싶어 하던 바보가 사라지기라도 했나?"
"⋯⋯ 초 대인."
소세예가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냈다.
소세예를 향해 고개를 기울여 웃어 보인 초명윤은 또다시 발밑에 있는 진사항을 흘깃 훑어보고는 말했다.
"됐다, 이런 반쯤 죽은 것 같은 꼴을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내가 진현문 대신 너를 거두지만, 다른 건 내가 신경 안 쓸 거다. 뭘 배우던 누구를 찾아 복수하건, 너 스스로 알아서 해."
그는 말을 끊고는 덧붙였다.
"하지만, 네가 머리에 피가 끓는다는 이유로 또 내 몸을 찌르려고 한다면 네 다리를 부러뜨리겠다. 할 건가, 말 건가?"
소년이 가진 약간의 반항심이 결국 초명윤에게 자극되었다. 진사항은 그를 경계하듯이 노려보았다.
"정주 누나가 나를 구하러 온 것은 날 죽이려고 한 거라고 네가 그랬지, 그러면 나는 뭘 근거로 너를 믿어야 하는데? 네가 날 이용하려는 게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아?"
초명윤은 여유 있게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 훑어보았다.
"내가 너를 이용할 수 있는 점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진사항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로 오직 이를 악물며 끝까지 물었다.
"내가 왜 너를 믿어야 하냐고?"
초명윤이 끝내 짜증을 냈다.
"믿을 거면 믿고, 안 믿을 거면 여기서 드러누운 채로 늑대가 널 물어가기를 기다리던가."
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걸음을 떼더니 몸을 돌려 가버렸다.
진사항은 한동안 반응을 하지 않았다.
가벼운 웃음을 금치 못한 소세예는 손을 들어 초명윤의 팔을 잡아 그를 멈추게 하고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땅 위에 드러누워 있는 진사항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넌 이 사람이 누군지 아니?"
진사항이 당혹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흉노를 격퇴한 초 장군은 알고 있어?"
진사항은 당혹스러워하는 채로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고개를 반쯤 숙였을 때 순간 얼어 버렸다. 그는 마치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깜짝 놀란 채로 초명윤의 모습을 주시했다.
담담하게 웃은 소세예가 말했다.
"이 사람이 너를 거둬들여서 이용한다 해도, 네가 이 사람을 이용할 수 있는 점이 더 많지 않아? 넌 지금 무공도 할 줄 모르잖아, 설마 배우지 않을 거야?"
일어난 진사항은 머뭇거리며 두 사람을 보았다.
"하지만 저분은 분명히 상관하지 않으시겠다고 했는데⋯⋯."
소세예의 웃음이 점점 깊어졌다.
"내가 생각하기엔 네가 이분께 달라붙어서 귀찮게 굴면, 아마도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소 대인⋯⋯."
초명윤은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분⋯⋯."
"이분이 지금 네 다리를 잘라 버린 것도 아니잖아?"
진사항은 망설이면서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하늘빛을 바라본 소세예는 가볍게 한숨 쉬며 말했다.
"잠시 후에 나와 이 분은 또 조회에 가야 해. 또다시 시간을 허비한다면 정말 기회가 없을 거야."
황급히 따라온 진사항은 불안한 듯이 초명윤의 옆얼굴을 보며 말했다.
"초⋯⋯."
초명윤은 쌀쌀맞게 그를 힐끗 흘겨보고, 또 웃음기가 깊은 소세예를 훑어보더니 걸음을 옮겨 가버렸다.
결국 초명윤은 진사항을 성 밖의 고즈넉한 저택에 안치하고는, 매우 바삐 자기 머리를 묶고 의복을 갈아입은 뒤 바로 입궁했다.
어로에서 향기가 풍겨왔으며 꾀꼬리 우는 소리가 끝나지 않았다. 궁궐의 새벽 종소리가 수많은 집까지 울려 퍼졌고, 옥섬돌 1에 선장 2은 천 명의 관리들로 붐비었다. 3
영락방은 이미 조사된 후 봉인되었으나 초명윤과 소세예가 추측한 제삼자 세력의 흔적은 발견된 적이 없었다. 진사항에 관한 일의 내막을 아는 사람은 두 사람뿐이었기에, 궁전으로 출근한 형부상서 육사는 지하 도박장의 처리가 그저 성상께 보고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 사건의 유일한 의문점은 그 누각 안이 분명히 부귀하고 번화하게 꾸며져 있었음에도, 의외로 돈을 모아둔 금고가 없다는 것이다.
이연정은 다 듣고 나서 관례에 따라 위로와 칭찬을 한 번 한 다음, 다시 천천히 알아내면 된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더라도 평범한 사건에 불과하지만 그 밑의 은밀한 흐름이 용솟음친다는 것은 몇 명만이 알고 있었다.
조회가 끝난 후 초명윤이 궁전을 나가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매우 급한 듯이 따라온 허인이 정중하게 말을 꺼냈다.
"초 대인."
"음."
초명윤은 그를 흘끗 보았다.
"용무가 있나?"
"그게⋯⋯,"
허인이 멋쩍게 웃으며 이어 말했다.
"무슨 큰일은 아닙니다. 못난 자식이 근래 소란을 피우는 데에는 익숙해졌으나, 이번에 결국 그런 곳에 가 연루되어 옥에 갇힐 줄은 정말 하관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초명윤은 조용히 그가 말을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비록 며칠도 안 되어 풀려날 수는 있으나, 하관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로 어릴 때부터 고난을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노모께서 손자를 아주 귀여워하셔서, 어제저녁에 이 일을 들으시고는 하룻밤을 꼬박 눈 뜬 채로 지내셨습니다⋯⋯."
한참 동안 이야기하던 허인은 초명윤의 관심 없다는 표정을 보더니 마침내 본론으로 들어갔다.
"듣자 하니 영락방 사건에 초 대인도 적지 않은 힘을 다하셨다지요. 하관도 융통성 있게 대인을 돕고 싶은데, 저의 불효자를 좀 더 이르게 풀어주실 수 있는지 봐주시지요."
초명윤이 갑자기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당신의 아들이 나랑 자고 싶다고 말하던데, 알고 있었나?"
안색이 급변한 허인이 황공하다는 듯이 감히 그를 바라보지 못했다. 그는 혀가 굳은 채로 말했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후일 반드시 하관이 호되게 훈계하겠습니다. 대인께서 넓은 아량으로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초명윤이 소리 내 조소하더니, 차갑게 말했다.
"이리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아들의 목숨을 바란다고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는 어세를 살짝 멈춘 뒤, 깊은 웃음기를 서서히 드러내며 말했다.
"하지만 책 속에서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아들을 교육하지 않은 것은 아비의 잘못이라고."
허인이 황급히 말했다.
"예, 대인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관이 잘못 가르친 탓입니다⋯⋯."
"난 그걸 말한 게 아니야."
느릿하게 말한 초명윤이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가 그를 주시했다.
"여태까지 너희들이 암암리에 나를 어떻게 논하는지에 대해선 개의치 않아 했지만, 그렇더라도 지켜야 할 건 지키는 게 좋아. 어쨌든 '나 같은 사람은 기분이 수시로 바뀌니까'. 네가 한 말이 맞나?"
그는 끝 음을 높게 올렸는데, 그 속에는 옅은 웃음기가 있었다. 허인은 등이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젖은 채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초명윤은 시선을 거둬들이곤 걸음을 옮겨 가버렸다. 그가 담화하던 사이에 소세예가 이미 옆을 지나가서 몇 장이나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초명윤은 걸어가면서 말했다.
"소 대인."
"소 대인?"
그는 미미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연거푸 두 번이나 불렀으나 소세예는 그대로 앞으로 걸어가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초명윤은 눈썹을 조금 치켜올리더니 억양을 길게 늘어뜨렸다.
"보배야——"
소세예가 몸을 돌려 다소 어찌할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보며 말했다.
"초 대인께서는 용무가 있으십니까?"
"당신과 같이 진사항의 일을 의논하지도 않았는데, 어찌 아직도 이리 제게 뜨뜻미지근하실 수 있습니까?"
초명윤은 그를 따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밖으로 나섰다.
"이치대로라면, 어젯밤의 일 이후로 당신과 저는 어쨌거나 친분을 조금 쌓은 셈이겠지요?"
같이 유곽에 놀러 가서 행패를 부린 적도 있는데, 어찌 친분을 조금 쌓은 것뿐이겠는가.
소세예가 담담하게 웃었다.
"초 대인께서는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 겁니까?"
"당신과 제가 이대로 한담을 잘 늘어놓다가, 옛일을 이야기하고, 서로 진심을 터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초명윤은 대충 생각해 보다가 덧붙였다.
"소 대인은 당신과 제가 아주 잘 어울린다고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
소세예가 말했다.
"어제 꼬박 하룻밤을 눈 뜬 채로 지내셨으니, 초 대인께서는 관저로 돌아가셔서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작가의 말:
소세예: 씻고 주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