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이런 사람이 지금까지 아내를 맞은 적이 한 번도 없더라니.
맑은 달밤, 소부(苏府).
동물 형상의 향로 안에 향을 몇 숟가락 더하자, 가느다란 푸른 연기가 끊임없이 느리게 피어오르고는 흩어졌다. 소세예는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금의 현을 조인 뒤, 몇 개의 음들을 손 따라 뜯어내었다. 그 소리는 마치 옅은 샘물이 흐르는 듯 가볍게 울렸다. 그는 마름 무늬가 새겨진 탁자 앞에서 잠시 조용히 서 있다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밤은 깊고 이슬은 영글어가는데, 귀하께서는 청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찾아오셨군요. 무슨 일입니까?"
방 밖에서 갑자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울리더니, 아름답게 조각된 창문이 밖에서 천천히 밀어 열렸고 웃음기 띈 목소리가 들려왔다.
"꽃을 꺾으러 왔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달빛이 그 사람의 귀밑머리를 비스듬히 스치며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는 새하얀 손가락으로 창틀을 붙잡으며 창턱에 기댄 채, 웃음기를 띈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창가로 다가간 소세예는 그와 서로 시선을 맞추며 아주 오랫동안 침묵했다.
"⋯⋯어째서 당신인 겁니까."
"저이면 안 되는 겁니까?"
초명윤이 말했다.
"초 대인께서는 야심한 시간에 방문하셨는데, 어찌 사람을 불러 알리지 않으셨는지요?"
소세예가 물었다.
"당신을 깜짝 즐겁게 만들려고 그랬죠."
"⋯⋯."
소세예가 이어 말했다.
"의관은 서쪽으로 삼 리만 가시면 됩니다."
"저의 이건 상사병인데, 당신이 몸소 저를 치료해 주지 않으시렵니까?"
손을 들어 올린 초명윤은 마음 따라 소세예의 어깨에 흩어진 먹물 빛 머리카락을 붙잡았다가, 조금 촉촉한 물기가 묻어나온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다시금 소세예를 올려다보았다.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는 그를, 달빛은 세세하고 구불구불하게 여윈 형상으로 묘사해 냈고, 동시에 목 옆 쇄골에 떨어져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다. 초명윤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참으로 때가 아닐 때 온 것 같습니다. 제가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딱 당신이 목욕하고 있을 때 만나지 않았을까요?"
소세예는 머리카락을 그의 손에서 빼내어 돌려놓은 뒤, 담담하게 말했다.
"들어와서 이야기하시죠."
한순간 말을 멈춘 그는 정말로 직접 들어오려던 초명윤을 눌렀는데, 이는 정말 어찌해 볼 방도가 없었다.
"⋯⋯ 문은 옆에 있습니다."
초명윤은 귀찮아하는 듯이 그를 힐끗 보았고, 손을 거두고는 옆으로 돌아서 왔다. 그는 문을 열고 방에 들어오는 동시에 유유히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밀회에 문으로 곧이곧대로 들어와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소 대인은 정말 정취라고는 없으십니다."
이미 두루마기를 단정하게 잘 정리해 입은 소세예는 차를 따르며 말했다.
"창문을 넘는 것이 정취라고 한다면, 초 대인의 눈에서는 도둑과 같은 부류들이 모두 절세가인으로 보인단 말입니까?"
"제 눈 속에는 오직 당신뿐이지 않겠습니까?"
초명윤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소세예는 찻잔을 그의 앞으로 건네며 입을 열었다.
"농담은 여기까지 합시다, 초 대인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차를 받은 초명윤은 두 손으로 받쳐 든 뒤,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며 말했다.
"당신이 그리워서요."
"⋯⋯ 저의 직언을 너그럽게 들어주십시오, 초 대인께서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말머리를 돌리는 습관을 고쳐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냥 당신을 보러 오는 것도 안 되는 겁니까?"
초명윤이 반문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잠시 말을 멈춘 소세예가 몸을 일으키더니 바깥쪽으로 걸어갔다.
"선부(先父)의 훈계에 따라, 저의 부(府)에서는 밤에 사적인 손님을 만나지 않습니다. 비록 실례이긴 하지만, 초 대인께서 이미 저를 만난 이상 제가 사람을 보내 당신의 부로 모시겠습니다."
"잠깐——"
소세예가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려 웃었다.
"초 대인께서는 무슨 일 때문에 오셨는지 기억나셨습니까?"
어쩐지 이런 사람이 지금까지 아내를 맞은 적이 한 번도 없더라니. 은밀하게 한숨을 쉰 초명윤은 바로 시원시원하게 입을 열었다.
"송형의 그 저택을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
소세예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물론 기억하지요, 왜 그러십니까?"
"며칠 동안 그 동부를 연구해 봤지만,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문득 그 저택 안에 기관이 많았다는 게 생각나더군요. 그곳에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명윤이 이어 말했다.
"소 대인께서 육사에게 그 저택을 형부에서 제 수중으로 떼어달라고 부탁할 의향이 있으신지요?"
"그 저택은 내내 비어 있었고 쓸모가 없었으니, 이 일은 응당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소세예가 그를 보고 웃으며 이어 말했다.
"이 일은 급한 일도 아닌데, 왜 초 대인께서는 내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굳이 밤중에 제 부로 와서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저는 법도에 어긋난 마음을 품은 사람이 뛰어 들어온 줄 알았습니다." 1
법도에 어긋난 마음을 품은 초명윤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얼굴빛을 바꾸지 않은 채로 말했다.
"제가 밀회하러 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밤을 틈타 온 것이니, 그는 당연히 계획한 바가 있었다. 수하들이 소세예를 이렇게나 오래 조사했으나 진전이 없자, 초명윤이 아예 기회를 빌려 직접 한 번 온 것이다. 소세예가 창밖에 그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그는 이미 시위를 피해 소부의 이곳저곳을 맴돈 뒤였다. 부는 지극히 평범했고 기관의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초명윤의 그것처럼 암위(暗衛)나 살수를 안배한 곳은 더더욱 없었으니, 예상 내의 결과는 더더욱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희롱하면서 소세예에게 대답하는 방법은 정말 몇 번이고 시험해 보아도 언제나 효과가 있었다.
소세예는 초명윤의 표정을 잠시 눈여겨보다가, 눈을 내리깔고 가볍게 화제를 끄집어냈다.
"저택을 분할시켜 태위부에 귀속시킨 후에는 형부와 어사대도 다시 끼어들어 간섭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단서가 잡히면, 초 대인께서는 어떻게 저에게 알려주실 겁니까?
초명윤은 손끝을 가볍게 자기 잔에 두드리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저를 못 믿으시겠다면, 저랑 같이 가서 보셔도 됩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소세예는 가볍게 웃고는 눈동자를 위로 굴려 그를 바라보았다.
"저는 당연히 초 대인이 믿음이 갑니다."
"사형?"
"⋯⋯ 응?"
정신을 차린 초명윤이 진소를 보고는 발을 젖혀 밖을 바라보았고, 그제야 이미 송형의 저택 앞에 와 있음을 알아차렸다.
소세예는 평소에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편이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양측이 인계인수를 끝냈다.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초명윤은 소세예가 그의 표정을 믿는다는 말에 생각이 다다를 때마다 마음속에 어렴풋하게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전에는 그가 후안무치하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소세예에게 알릴 작정이었다면, 지금은 다소 망설임이 좀 느껴졌다.
초명윤과 진소는 마차에서 내려 저택으로 들어갔고, 서재로 들어가는 곧은 길을 걷는 동안 영위들이 소리 없이 뒤를 이었다.
그날 밤 담경의 말에 따르면, 계책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받은 그 가짜 송형은 떠나지 않고 오히려 서재로 향했다. 이것은 서재의 출구를 막아 그와 소세예를 지하 감옥에 가두려던 것이 아니라, 다른 중요한 물건이 아직 남아 있음을 분명히 내포한다.
서재 안은 전과 같이 꾸며져 있었으나 오랫동안 사람이 없어 얇은 먼지가 쌓여 있었다.
초명윤은 지하 감옥을 나오는 책장을 유심히 보았다. 뒤에서 사방을 뒤지던 영위가 갑자기 목소리를 냈다.
"주상."
"음?"
초명윤이 몸을 돌려 걸어갔다.
영위가 공손히 물러나자, 그는 고서적 뒤에 가려진 나무판에 움푹 파인 부분을 보았고 그 윤곽이 조금 낯익었다. 초명윤이 동부를 끼워 넣으니 빈틈없이 맞아들어갔다. 정적 속에서 갑자기 '찰칵'하는 소리가 낭랑하게 울리더니 기관이 작동하는 소리가 느릿느릿하게 퍼졌다. 눈앞에 있던 책장이 두 부분으로 갈라지며 열렸고, 그 안은 칠흑같이 어둡기는커녕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와 하마터면 사람의 눈이 부실 뻔했다.
환하게 빛나는 금괴가 차곡차곡 쌓인 상태로 석실(石室)의 반을 꽉 채우고 있었다.
초명윤마저도 견디지 못하고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감탄했다.
"도박장의 금고가 원래 여기 있었군, 정말 나보다도 돈이 훨씬 많구나. 이렇게 비교해 보면, 사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크고 작은 재물을 수탈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 넌 어떻게 생각해?"
그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진소에게 물었다.
진소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흘깃 보았다.
석실의 반대편에는 책꽂이가 일렬로 놓여 있었고, 그곳에는 적지 않은 수의 책자들이 쌓여 있었다. 초명윤은 손에 잡히는 대로 책자를 꺼내어 뒤적거리다가 매우 놀란 기색을 미미하게 드러내었다. 그는 또다시 다른 몇 권을 더 펴 보고는, 곧 의미심장한 웃음기를 담아 입꼬리를 올렸다.
책자에는 수도와 그 부근에 있는 몇 군(郡) 관리들의 이력이 기재되어 있었다. 책자마다 한 사람, 생애에 거친 경위부터 가솔과 아내와 자식까지. 일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낱낱이 늘어놓은 것이 수집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진현문의 죽음부터 송형의 일, 그리고 영락방 사건까지. 지금 이 모든 일들이 똑같은 근원으로부터 발생했다는 것을 확실시할 수 있었다. 게다가 상대방은 과연 아주 오랫동안 계획해 왔고, 밀려오는 기세가 매우 세찼다.
"되었다."
초명윤이 입을 열어 영위에게 분부했다.
"이 책자들은 관저 안으로 운반하고, 저쪽에 있는 금괴는 너희들이 각자 필요한 만큼 가지거라. 빨리 움직여라, 내가 소세예에게 알리고 난 뒤에는 이건 모두 이연정에게 바쳐져 물 쓰듯 쓰일 테니까."
영위들이 알겠다고 말하고는 일제히 책자를 옮기려 앞으로 나아갔다.
눈길을 돌린 초명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안에 들린 책자 위를 보았다.
"우부풍 정완(郑琬)⋯⋯." 2
깊은 밤중에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인,"
문밖의 사람이 이어 말했다.
"부하가 긴급한 일을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정완은 소리를 듣고 공문을 내려놓더니,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길래⋯⋯"
대청에는 이미 시체 두세 구가 가로로 놓여 있었다. 문 앞에 서 있던, 복면을 쓴 흑의인이 천천히 얼굴을 들어 올렸다.
한 줄기 하안빛이 돌연 나타나더니 명치에 찌르는 듯한 아픔이 차디차게 느껴져 왔다. 반응조차 할 수 없던 정완이 고개를 숙이자, 시퍼런 칼날이 흉강에 잠겨져 있는 것만이 보였다. 격렬한 비명이 입에서 나올 틈도 없이 흑의인은 벌써 칼을 뽑고 후퇴했는데, 발끝이 가볍게 땅을 점점이 디디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비틀거리던 정완은 돌연 입안에 가득한 피를 뿜으며 고개를 위로 젖히고는 땅 위에 넘어졌다.
하늘가에 있는 냉담한 달뿐만이,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았다.
작가의 말:
갑자기 여러 댓글이 달리는 걸 보니까 정말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무언가를 쓰는 데에 최대의 행복은 이야기에 대한 댓글을 보는 거예요. =v=
당연히 댓글을 달지 않고 이야기를 읽고 계시는 작은 천사분들도 귀엽습니다 =v=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