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를 번역합니다. 주로 단메이(耽美) 소설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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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https://www.jjwxc.net/onebook.php?novelid=2134415&chapterid=5

 

문안

 

한 몰락한 문파가 잘난 척하는 원숭이, 말썽쟁이 요괴, 냉혹한 귀신, 바보와 잡종의 손에서 어떻게 재건되는지에 대한 수진(修眞) 이야기. 

 

CP는 대사형이 연상~
사고뭉치 공 x 매몰찬 수

 
 

'이 개자식은 마음이 너무 단단하니, 장차 큰 그릇이 되지 않으면 틀림없이 큰 화가 될 것이야.'

 
 
엄쟁명의 태도는 오만불손했고, 정잠을 부르는 손짓도 분명 개를 부르는 것과 똑같았다.

그가 하는 행실에, 한순간 아름다움에 놀라 있던 정잠은 정신을 차리는 데에 성공했다.

정잠은 어릴 때부터 아무도 귀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속에 열등감이 매우 컸다. 이런 일이 오래 지속되자, 열등감은 뼛속까지 가라앉아 가슴 가득히 요동치게 된 끝에 거의 편집증적인 자존심으로 변했다. 눈빛 하나만으로도 그를 민감하게 만들 수 있는데, 이런 고양이를 건드리고 개를 놀리는 손짓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정잠은 마치 음력 섣달의 추운 겨울 속에서 야박한 누군가에게 냉수를 흠뻑 맞아, 얼굴이 꽁꽁 얼어버려 얼음이 된 듯했다. 결빙된 얼굴에 무표정을 띈 그는 앞으로 나아가 엄쟁명의 손을 피하며, 공적인 일을 원칙적으로 처리하는 듯이 읍하며 인사했다.



"대사형."



엄쟁명은 고개를 내밀어 그를 눈에 담았다. 그가 이렇게 몸을 살짝 내미니, 그윽하고 남몰래 피어나는 난초 향기가 따라와 정잠의 주변을 휘감았다. 그의 이 낡은 옷에다가 얼마나 향기를 쐬었는지는 몰라도, 벌레를 쫓기에 충분했다.

이 대사형 도련님은 눈치를 잘 보지 못하는 게 틀림없었다. 결국 그는 정잠이 곧 억누르지 못하게 될 분노에 전혀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는 심지어 유유자적하게 정잠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 훑어보았다. 인재를 알아보는 것처럼, 훑어본 뒤에는 아마도 마음에 들었는지 엄쟁명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사람의 반응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채로 그가 처음 만난 사제에게 진지한 덕담을 전했다.

그는 방망이[각주:1]처럼 말했다.



"그런대로 괜찮네, 나중에 역변하지 말거라."



말을 끝내자, 대사형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상냥함을 드러내기 위해 도련님은 억지로 정잠의 정수리에서 일촌[각주:2] 정도 떨어진 곳을 손바닥으로 스치는 것을 해냈다. 머리를 쓰다듬은 척한 것이다. 뒤이어 그가 무성의하게 분부를 내렸다.



"저기 있는 '함원(含冤)'하다던 애랑 '대굴[각주:3]'인 애는 내가 다 봤으니, 사부께서 같이 데리고 가세요 —— 음, 소옥아(小玉兒)야, 저 애⋯⋯ 저 두 명에게 잣엿을 한 주먹 정도씩 먹게 주거라."



목춘진인의 늙은 얼굴이 살짝 경련했다. 그는 갑자기 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이 불초 제자에게 데려와서 보여준 게 마치 제자가 아니고 아주 멀리서 구해다 온, 첩실 구실을 할 여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 그것도 용모가 그다지 흡족하지 않은 여종 말이다!

잣엿은 주위에서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잣엿이 아니었다. 정교하고도 조그마한 향낭 안에 담겨 있었는데, 잣은 알알이 옹골졌고 그 겉면에는 영롱하게 반짝이고 투명한 설탕 막이 얇게 한 층 입혀져 있었다. 또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꽃향기가 한 줄기 뒤섞여 있었으니, 그 향기는 마음속까지 깊이 스며들어 울림을 주었다(沁人心脾).

이렇게 정교하게 생긴 먹을거리는 빈민가의 아이가 본 적이 없는 것이지만, 정잠은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는 문을 나서자마자 손에 든 향낭과 잣엿을 전부 한연에게 쑤셔 넣어주며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이건 사제가 먹는 편이 더 낫겠어."



그의 '대범함'에 한연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한연은 심경이 복잡해진 채로 향낭을 받아쥐었고, 모처럼 조금 부끄러워졌다.

어린 거지는 이만큼 클 때까지 쟁탈을 해야지만 음식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누군가 얼굴을 내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무조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였다. 개개인이 들개처럼 살아가는데, 누가 다른 사람을 배려해 줄 여력이 있겠는가?

한연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감동과 동시에 그의 마음속에는 하늘만큼 큰 오해가 생겨났다 —— 그가 새로 알게 된 작은 사형은 연약하고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 정말 계산적이지 않고 자신을 잘 대해주는 사람인 것이다.

목춘진인은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정잠이 불쾌해하며 마치 손 위에 더러운 무언가가 묻은 것처럼 자신의 손을 털어내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곧 그는 깨달았다, 이 녀석이 엿을 넘겨준 건 겸손하게 사양할 줄 아는 좋은 인품을 가져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 요마같은 대사형의 체면을 세워줄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서, 이 나이대의 아이가 맞닥뜨릴 수 있는 유혹은 사실 먹고 마시는 것이 최대였다. 정잠은 결국 참아낼 수 있었고, 감사히 받지 않을 수 있었으며, 거들떠보지도 않을 수 있었다.

목춘진인은 조금 감격한 채로 생각했다.



'이 개자식은 마음이 너무 단단하니, 장차 큰 그릇이 되지 않으면 틀림없이 큰 화가 될 것이야.'



이렇게 해서, 어린 개자식 정잠은 부요파에 정식으로 입문했다.

그는 자신의 청안거에서 살게 된 첫날에 누워서 잠이 들자마자 다음 날 인시 삼각[각주:4]까지 잤다. 꿈도 꾸지 않고 깊게 잤고, 잠자리도 가리지 않았으며, 집을 그리워하지도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설청은 정잠을 장포로 갈아입히고 상투를 틀어 올려 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듯이 치장했다.

어린아이는 원래 속발[각주:5]하고 가관[각주:6]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설청이 말하길, 이렇게 치장한 이유는 그가 이미 선문에 들어왔기 때문에 속세의 아이라고 여겨질 수 없어서라고 했다.

가금 문파와 무허가 문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허가 문파는 단순히 눈을 가리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지만, 가금 문파는 겉보기에만 연원이 불길해 보일 뿐, 실제로는 경제적인 기반이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꼽자면 부적이다. 풍문 속의 천금으로도 구하기 어려운 선인 부적이 여기에서는 거의 곳곳에 널려 있어, 나무와 돌 따위까지에도 새겨져 있었다. 설청은 나무 한 그루의 뿌리 위에 새겨진 부적을 가리키며 정잠에게 말했다.



"셋째 사숙께서 만약 산에서 길을 잃으신다면, 이 돌과 나무에 물어보기만 하면 됩니다."



설청은 말하면서 앞으로 한 걸음 가더니, 모범을 보이기 위해 큰 나무의 뿌리에 대고 말했다.



"'부지당(不知堂)'으로 가기를 청합니다 —— 부지당은 장문께서 기거하시는 곳입니다. 사숙께서는 방금 입문하셨으니, 오늘 장문께 가서 수계(受戒)하십시오."



정잠은 대답할 겨를도 없었다. 놀란 그는 눈앞에서 옅게 형광을 띠는 나무뿌리를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날이 아직 환하게 밝지 않았다. 자그마한 그 빛은 몽글몽글하게 덩어리진 채로 달빛처럼 투명하게 빛나며, 공연히 선기가 피어나는 것처럼 산림 속을 비추었다. 다른 돌과 나무 위로 다가간 그것은 숲속에서 뚜렷하고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되었다.

이것은 비록 정잠이 첫 번째로 본 선기는 아니었지만, 정잠이 첫 번째로 본 유용한 선기였다!

상대방의 안색을 살피고 그 의중을 헤아리는 솜씨가 일류인 설청은 이 아이가 사사로운 감정에 이끌리지 않으며 감정을 아주 교정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정잠이 깜짝 놀라는 것을 보고도 폭로하지 않고 스스로 이쪽을 바라보기만을 기다렸다가, 그제서야 감정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으며 주의를 환기해 주었다.



"셋째 사숙께서는 이쪽으로 오십시오, 빛을 따라가면 됩니다."



형광이 깔린 길을 걷자니, 정잠은 비로소 자신이 지금 다른 사람이 되었고 곧 다른 생활을 할 것이라는 감각이 생겼다.

정잠이 물었다.



"설청 형, 이건 누가 만든 겁니까?"



정잠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교정하지 못한 채로 아예 그를 따라간 설청은 질문을 듣자 바로 대답해 주었다.



"장문이십니다."



놀란 정잠은 믿기를 조금 어려워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잠에게 장문 사부의 인상은 조금 귀여운 긴 목을 지닌 꿩일 뿐, 보기에도 좋지 않았고 쓸모도 없었다 —— 그렇다면 설마 사부께서 사기꾼이 아니시란 말인가?

사부께 알려지지 않은 재능이 더 있는 것은 아니겠지?

사부께서도 전설 속에 나오는 그 모습처럼 대적할 자가 없고, 비바람을 부를 수 있을까?

정잠은 불가사의한 동경을 품고 상상해 보았지만, 자신이 전과 다름없이 사부에 대한 진정한 경외심을 품기가 어렵다는 것만 깨달을 수 있었다.

설청은 정잠을 데리고 빛나는 오솔길을 따라 목춘진인의 부지당에 도착했다.

'부지당'은 사실 자그마한 초가집이며 어떤 선기도 편액도 없었다. 마당 입구에 걸린, 손바닥만 한 목패 위에는 짐승 머리 하나가 거칠게 새겨져 있었다. 정잠은 그 짐승 머리가 조금 낯익게 보였지만, 잠시 그것이 뭐였는지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짐승 머리 옆에는 작은 글씨가 한 줄로 적혀져 있었는데, 그 내용은 '一問三不知[각주:7]'였다.

초가집은 순간 정잠이 시골의 집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곳은 너무 검소하다 못해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집 문어귀에는 외롭고 처량하며 기댈 곳 없는 작은 뜰이 있었다. 뜰 안에 놓인, 다리가 세 개 달린 작은 나무 탁자는 원래 다리가 있어야 했던 부분이 절뚝거려서, 그 모서리 밑에다가 돌 한 덩어리를 받쳐 놓고 있었다. 목재 탁상의 윗면에는 갈라진 금이 가득 퍼져 있었고, 작은 탁자의 뒤에 옷깃을 바로하고 단정하게 앉아 있던 목춘진인은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쟁반을 넋이 나간 것처럼 집중해서 주시하고 있었다.

쟁반은 조잡하게 만들어진 울퉁불퉁한 도기(陶器)로, 만든이의 솜씨가 아주 나빴는지는 몰라도 조형이 어딘가는 각지고 어딘가는 둥글어서 무슨 모양인지도 모르겠을 뿐더러[각주:8] 바닥이 평평하지도 않았다. 쟁반 위에는 녹이 슬고 오래된 동전이 몇 개 정도 흩어져 있었다. 쟁반과 동전은 서로 어우러지면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케케묵은 음산함을 자아냈다.

정잠의 발걸음이 자기도 모르게 멈칫했다. 그 순간, 그는 동전을 주시하는 사부에게서 중후한 위엄을 느꼈다.

한편에 있던 설청은 웃으며 말했다.



"장문께서는 오늘 괘상[각주:9]에서 무슨 천명을 살펴보셨습니까?"



그 말을 들은 장문은 엄숙하고 경건하게 동전을 거둔 후, 두 손을 소매 안에서 모으고 유유히 말했다.



"천도(天道)에 명(命)이 있다. 오늘 식사엔 충분한 닭고기 버섯 조림[각주:10]이 필요하구나."



그는 이 말을 하면서 수염을 약간 곧추세우고, 작은 눈동자를 좌우로 몇 번 굴리다가 코끝을 미미하게 움찔거리며 조금도 거짓 없는 바람을 숨김없이 나타냈다.

정잠은 그의 표정을 보자마자 낯익음을 느꼈고, 갑자기 머릿속에서 원인과 결과가 연결되기 시작하더니 순간 운이 트여 생각도 영민해지듯이 떠올려 냈다 —— 부지당 입구에 있던 목패 위의 짐승은 족제비였다!

농촌의 어리석은 백성들은 성현의 이름도 모를뿐더러 불경이나 도경을 읽을 줄도 몰랐다. 그들은 신에게 빌고 불상에 절하는 것도 닥치는 대로 해왔는데, 그중 '황대선(黄大仙)'과 '청대선(靑大仙)' 등, 정통성이 없는 '신선'도 신분을 속인 채로 섞여 들어가 있었고 또 여러 마을에서 모두가 알고 있었다.

'황대선'은 족제비 요괴를 가리켰고, '청대선'은 뱀 요괴를 이야기하며 '호가사[각주:11]'라고도 불렸다. 말하는 바에 의하면 이 두 신을 공양하면 집과 뜰을 지키고 평안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정잠은 어렸을 때 마을에서 황대선을 공양하는 위패를 본 적 있는데, 그 위패에는 그 짐승 머리가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그는 다시 목춘 그 사람을 보았다. 허리가 길고 다리가 짧은 몸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여위었고, 그 외에도 작은 머리에 닭 같은 얼굴이⋯⋯, 어떻게 보아도 요괴가 된 족제비 같았다!

이렇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의심과 우려를 품은 정잠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복잡한 심정으로 족제비로 의심되는 사부께 평범한 태생과 육안을 지닌 몸으로 예를 표했다.

사부께서는 허허 웃으며 손짓하면서 말했다.



"지나치게 예를 차리고 고리타분해질 필요는 없다. 우리 부요파는 이런 시간 낭비를 불허한다."



정잠은 마음이 떫은 상태로 생각했다.



'그럼 뭐를 허가해 주는데요? 닭고기 버섯 조림?'



바로 이때, 한연이 찾아왔다. 한연은 가까이 오기도 전에 소리쳐 불렀다.



"사부! 사형!"



무엇이 '예절을 불허한다'인지 몸소 체험하고 힘써 실천한 그는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하찮은 일에 매우 놀라며 말했다.



"아이고, 사부님, 어찌 이렇게 낡은 곳에서 사십니까!"



고함 지르는 것을 끝내자, 그 어린 거지는 원래 부지당에 익숙한 듯이 뜰을 한 바퀴 돌았고, 마지막에는 정잠의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 식견이 좁은 작은 거지는 이미 잣엿 한 주머니에 완전히 매수된 뒤라 정잠이 자신에게 잘해준다고 굳게 믿고 있었고, 신랄하게 비꼬며 사형을 부르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다가가서 다정하게 정잠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소잠(小潜), 어제는 왜 나한테 같이 놀러 가자고 하지 않았어?"



그를 보자마자 귀찮음이 도진 정잠은 즉시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며 뒤로 반걸음 물러났고, 그의 손에서 자신의 소매를 빼내고는 반듯하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



"넷째 사제."



설청이 어른으로 단장시켜 준 정잠은 반질반질한 이마와 가늘고 긴 미목(眉目)을 드러내고 있어 우아하고 아름답게 보였고, 옥으로 만든 인형 같았다. 한 사람이 정말 옥으로 만들어졌다면, 조금 괴팍해도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비도 어미도 없고 가르쳐 준 사람도 없이 거지로 살아온 한연은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뭐든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누군가가 좋으면 뭐든지 다 좋았다 —— 정잠은 지금 그에게 있어서 어떻게 보아도 좋은 사람이었기에, 상대방이 냉대하더라도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아 했고 여전히 기뻐하며 생각했다.



'집에서 자란 아이는 나처럼 각지를 떠돌아다닌 사람과는 달라. 낯을 가리는 것 같으니, 앞으로 내가 더 돌봐줘야겠다.'



목춘진인은 눈이 비록 작긴 하다만 그 속에서 쏘아진 눈빛은 횃불 같았다. 냉정한 눈으로 잠시 방관한 그는 목소리를 내어, 한연이 떠돌이 이발사의 멜대는 한쪽만 뜨거운[각주:12] 망신을 당하는 것을 끊어 버렸다.



"소연(小渊), 이리 오거라."



한연은 정신을 못 차리는 채로 곧 무너질 것 같이 흔들거리는 작은 탁자 앞으로 갔다.



"사부님, 무슨 일이에요?"



목춘진인은 그를 보고는 엄정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비록 네가 늦게 입문했지만, 나이는 셋째 사형보다 많지 않으냐. 사부가 먼저 네게 몇 마디를 분부하마."



족제비 같은 사부도 역시 사부였다. 그의 보기 드물게 근엄하고 장중한 태도에, 한연은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폈다.

목춘이 말했다.



"네 성정은 너무 자유분방해서 경망스럽기 쉬워진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부가 네게 '반석[각주:13]'이라는 두 글자를 훈계 삼아 내리니, 이는 너를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천도(天道)는 교묘한 수단으로 사리사욕을 취하는 것을 싫어하고, 교만과 자만을 싫어하며, 심혈을 기울이는 데에 정통하지 않음을 싫어한다[각주:14]. 이후로는 항상 마음을 가라앉히고 단속해야 하며, 하루도 게을러서는 안 된다. 이해했느냐?"



한연은 손을 들어 콧물을 닦았다. 사부가 한 훈계를 반 구절도 알아듣지 못한 그는 어리둥절해진 채로 '아'라는 소리를 냈다.

다행히도 한연의 실례를 추궁하지 않은 목춘은 말을 끝내자 바로 정잠 쪽을 향했다.

정잠은 이제서야 사부께서는 사실 천성적으로 삼각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눈꺼풀이 조금 속쌍꺼풀이기도 하고 평소에는 눈이 항상 반쯤 감겨 있어서, 흔들리는 눈빛에 옹졸한 용모로 보였던 것이었다. 이번에 사부께서 눈을 뜨셨을 때, 갑자기 다소 흑백이 분명한 데다 맑고 투명한 눈빛이 약간은 가라앉은 채로 밝게 드러났다. 거기에다가 사부의 정잠을 향한 표정은 거의 엄격함에 가까웠다.

  1. 목춘진인을 가리키던 방망이(棒槌)와 같은 단어. 여기서는 '멍청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본문으로]
  2. 一寸, 약 3cm. [본문으로]
  3. 원문은 帶屈이다. '함원'이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다'라는 의미라면 '대굴'은 '억울함을 품다'라는 의미이다. 중국의 성어 중 含冤負屈은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본문으로]
  4. 인시(寅時)란 새벽 3~5시를 이르는 말이고, 삼각(三刻)이란 45분을 이르는 말이다. [본문으로]
  5. 束髮, 15세가 되어 머리를 땋는다. 배움을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다. [본문으로]
  6. 加冠, 20세가 되어 관례를 행하고 관을 쓰다. [본문으로]
  7. 한 번을 물으면 세 번을 모른다고 한다. 절대로 모른다고 말한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8. 원문은 '方不方,圓不圓'으로, 직역하면 각진 부분과 각지지 않은 부분, 둥근 부분과 둥글지 않은 부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다만 '方不方,圓不圓' 자체가 헐후어(속담처럼 쓰이는 중국어 숙어)이기 때문에 没有規矩,不成方圓라는 속뜻도 지니는데, 이는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 없다'와 '그림쇠와 곱자 없이는 네모와 동그라미를 그릴 수 없다' 두 가지로 번역할 수 있다. [본문으로]
  9. 역괘(易卦)에서, 길흉을 나타내는 상(象). 유의어로는 효상(爻象)이 있다. [본문으로]
  10. 원문은 小鷄炖蘑菇이다. 파, 팔각, 생강, 말린 고추 등을 넣고 볶은 기름에 닭고기를 넣고 간장과 설탕, 소금을 붓고 볶다가 물과 표고버섯을 넣은 다음 졸여낸 음식이다. [본문으로]
  11. 護家蛇, 집 지키는 뱀. [본문으로]
  12. 원문은 '剃頭挑子一頭熱'로 헐후어이며, 옛날에 떠돌이 이발사가 멜대 한쪽에는 이발 기구를 담고 또 다른 한쪽에는 더운물을 담아 다닌 데에서 유래하였다. 편애를 뜻하기도 하지만, 일방적인 소망이나 한쪽은 간절한 마음이지만 상대방은 냉담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13. 磐石, 큰 바위. 안정되어 있고 견고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14. 작가 주: 해당 문장은 증국번(曾國藩)의 가서(家書) 중 한 편의 글에서 언급된 '天道忌巧(천도는 교묘한 것을 싫어한다)', '天道忌盈(천도는 충만한 것을 싫어한다)', '天道忌貳(천도는 변절을 싫어한다)'라는 부분을 늘려서 제가 억지로 갖다 붙인 거예요.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