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협선협답사기
주로 단메이(耽美) 소설을 번역한 개인 작업물을 백업합니다.
@mingmengsung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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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https://www.jjwxc.net/onebook.php?novelid=2134415&chapterid=4

 

문안

 

한 몰락한 문파가 잘난 척하는 원숭이, 말썽쟁이 요괴, 냉혹한 귀신, 바보와 잡종 도사의 손에서 어떻게 재건되는지에 대한 수진(修眞) 이야기. 

 

CP는 대사형이 연상~
사고뭉치 공 x 매몰찬 수

 
 

이 서열 일인자로 말할 것 같으면 —— 정잠은 보자마자 알았다, 그는 한마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방탕아임을.

 
 
떳떳한 사부라는 사람이 왜 대사형을 '알현'할 필요가 있는가?

정잠과 한연은 모두 얼떨떨해했고, 사부께서는 천하가 혼란스럽지 않을까 봐 걱정된다는 듯이[각주:1] 설명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거라, 너희들의 대사형은 아주 무심하시니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스승을 대하듯이 똑같이 대하면 돼."



잠깐, 뭐가 '스승을 대하듯이 똑같이'라는 거지?

결국 목춘진인은 두 어린 제자의 머리 위에 있는 옅은 안개를 두껍고도 무거우면서 끈적끈적한 풀로 변하게 하는 데에 성공했다[각주:2].

산문(山門)을 지나자, 도동[각주:3] 몇 명이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따라 맞이하러 왔다.

도동들은 다 자란 이들은 나이가 열일곱에서 열여덟 즈음으로, 아직 어린 이들은 열셋에서 열넷 즈음으로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용모가 수려한 데다가 신선과 보살의 금동자[각주:4]처럼 옷소매를 나풀거리며 바람 없이 움직였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떡 벌린 한연은 말할 필요도 없고, 길을 걷는 동안에 자못 자부심을 약간 가지고 있던 정잠도 남보다 못함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미묘하게 조금 일렁였다.

선두에 서 있던 도동은 멀리서 목춘진인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사람이 도착하지도 않았으나 이미 먼저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고 꽤 예법에 구애받지 않는 태도로 말했다.



"장문께서는 이번에 또 순유하다가 어디로 가셨던 겁니까, 어째 온몸이 기근에 굶주려 피난 오신 듯한 행색이십니다 —— 어, 이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디서 유괴해 온 소공자입니까?"



정잠은 마음속으로 친밀하게 인사하는 말을 한 글자와 한 문장마다 세세하게 쪼개어 분석해 보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우러러 존경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잡아낼 수 없었다. 도동이 인사하는 말은 마치 '장문'이 아니라 무슨 '이웃 마을의 한씨 아저씨'를 대하는 듯했다.

목춘진인도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그는 얼굴에 결심안[각주:5]을 다소 드러낸 채로 웃음을 띠더니 정잠과 한연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새로 거둔 제자다. 아직 어리니, 네가 잘 안배해 주거라."



도동이 웃으며 말했다.



"어디에 안배할까요?"

"이 아이는 남원(南院)으로 데려가거라."



목춘진인이 손 가는 대로 한연을 가리켰다. 그런 뒤 그는 의도한 듯 의도하지 않은 듯 고개를 숙이더니, 정잠이 위로 올려다보는 눈빛을 마주 보았다. 어린 소년의 흑백이 분명한[각주:6] 두 쌍의 눈 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천성적인 자제력과 조금은 들여다보기 어려운 부분, 낯선 환경에 대한 당황스러움이 있었다.

목춘진인의 입가에 점잖지 못한 웃음이 갑자기 사라졌다. 잠시 후, 그는 경건함에 가까운 태도로 정잠이 갈 곳을 가리켰다.



"정잠은 변정(邊亭)에 머물게 하거라."



'변정'은 정자가 아니라 위치가 한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원(院)이며 이는 무리를 떠나서 홀로 쓸쓸히 지낸다는 의미가 다소 있었다. 원의 담장 한쪽에는 시냇물이 아주 차분히[각주:7] 흐르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오직 광활한 대나무 숲만이 펼쳐져 있었으니 극히 고요했다.

대나무 숲은 생각건대 여러 해를 살아왔으며 더 나아가 왕래하는 산들바람까지도 취색(翠色)으로 물들여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원은 마치 대나무로 된 바닷속에 자리 잡고 있는 듯했고, 다소 청심과욕하게 푸르렀다.

원의 문어귀에는 두 개의 장명등이 걸려 있었다. 주술이 새겨져 있었으나 정가(程家)의 '대대로 전해지는 보물' 보다 훨씬 정교했다. 빛무리가 부드러웠고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아 사람이 걸어가도 놀라지 않았으며, 하나는 왼쪽에 하나는 오른쪽에 있었다. 그 중간에는 수려하고 그윽하면서도 아득하게 문패 역할을 하는 편액이 사이에 끼어 있었고, 그 위에 '청안(清安)'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아마도 산을 오르는 입구에 '부요'라는 두 글자도 같은 사람의 손에서 나온 듯싶다.

정잠에게 길을 안내한 도동은 이름이 설청(雪青)으로, 정씨 집안의 맏형과 거의 비슷한 나이였다. 설청은 키가 크지도 작지도 않았고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았으며, 자세히 살펴보면 용모가 맑고 빼어난 셈 칠 수는 있었으나 오관[각주:8]이 조금 담박하게 생겨 그 도동 무리 중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었다. 인품도 과묵하여 별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여기는 우리 산의 변정으로 청안거(清安居)라고도 불립니다. 예전에 장문께서 이곳에서 지내신 적이 있다고 하던데, 그 뒤로 비어 있어 재당(齋堂)으로 사용된 적도 있습니다."



설청이 가볍고 느린 어투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셋째 사숙(師叔)께서는 재당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정잠은 사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별로 개의치 않은 척 고개를 끄덕이며 설청을 따라 작은 원으로 들어갔다. 작은 원의 줌심에는 한 장(丈) 정도 되는 연못이 있었는데, 아랫면에는 검은 느릅나무로 된 쟁반 위에 주술이 새겨져 있었다. 틀림없이 무슨 고정 작용을 하는 것일 테다 —— 그 연못 속의 물은 움직이지도, 흘러내리지도 않았으며 엉겨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정잠은 그제야 원래 이것이 연못이 아니고 보기 드문 커다란 보석 한 덩어리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 돌은 옥도 비취도 아니었으며, 손에 닿자 차가움이 피어났다. 검은 초록색 속에서 미미하게 남색 빛을 띠는 것이 한랭하고도 심원한 고요함이 있었다.

정잠은 이런 진귀한 물건을 본 적이 없었다. 설사 시골뜨기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던 그는 잠시 자기도 모르게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설청이 말했다.



"이 물건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다들 청심석(清心石)이라고 부릅니다. 장문께서 찾아오신 것인데, 예전에 재계하실 때마다 항상 여기 위에 계시면서 늘 사용하셨답니다. 이게 있기에 이 원은 여름에 상당히 시원합니다."



정잠은 참지 못하고 느릇나무로 된 쟁반 위에 밝게 빛나는 부적을 가리키며 물었다.



"설청 형, 이 주술은 무슨 용도입니까?"



설청은 정잠이 그를 이렇게나 정중하게 대할 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잠깐 멍해지고 나서야 대답했다.



"셋째 사숙께서 제게 과분한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 이건 주술이 아닙니다."



정잠이 그를 힐끗 바라보자, 그의 눈빛 속에서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의심을 설청은 조금 신기해하면서 읽어내었다. 이 소년의 눈빛은 마치 말을 하는 것 같았고 장문께서 거둔 다른 한 명보다 더욱 정조세탁[각주:9]하게 보였다.

설청은 어떻게 표현해야 마땅할지 모르겠으나, 사실 그는 이 아이를 보고 신분이 높지 않은 데다가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만 그는 스스로를 소탈한 군자로 빚어내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남의 말을 기계적으로 모방하며 동작 하나하나가 고지식하지 않음이 없었고, 마치 어떤 얼굴로 사람과 교제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간단히 말해서, 약간 허장성세를 부리는 것이다 —— 게다가 목표와 모방하는 대상이 없는 허장성세였다.

보통 모양만 꾸민 사람은 조금 밉살스럽다고 느껴지기 마련이다. 설사 작은 어린아이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설청은 정잠이 밉살스럽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조금 형언할 수 없이 생겨났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느린 어조로 소곤거리며 대답했다.



"셋째 사숙, 설청은 자질이 좋지 않은 데다가 허드렛일하는 하인입니다. 장문과 작은 사숙들의 생활을 돌볼 뿐이지요. 주술의 도(道)는 넓고 심오하여, 우리 같은 사람들은 피상적인 것마저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단지 장문께서 말 한마디를 꺼내시는 것이나, 조금 있다가 여기저기서 말하는 것을 들을 뿐입니다. 공자께서는 장문이나 우리 집⋯⋯, 사숙의 대사형께 가셔서 여쭤보셔도 무방합니다."



'우리 집(我家)'이라는 두 글자를 예민하게 들은 정잠은 또다시 이 도동들이 장문을 친밀하다 못해 공경이 부족한 태도로 대했던 것이 떠올라, 마음속에 더더욱 의심이 피어올랐다.

매우 빠르게 그를 데리고 청안거 안의 배치를 상세히 알려준 설청은 황급한 모양새로 그가 떠도는 생활을 하느라 먼지로 된 여독(旅毒)이 덮여 있는 몸을 깔끔히 씻는 것을 시중들었고, 또 꼭 맞는 옷으로 갈아입힌 다음 안과 밖을 말끔히 치우고 나서야 그를 이끌고 나왔다.

정잠은 스스로 추태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설청과 빙빙 돌려 말하여(旁敲側擊) 대사형이 대체 뭐 하는 분이신지를 알아보았다. 알게 된 것은 대사형의 성이 엄(嚴)이며, 엄쟁명(嚴爭鳴)으로 불리고 출신이 부귀하다는 것이었다.

부귀한 게 어느 정도일까? 이 지점에서 정잠은 얼떨떨하게 들었다 —— 그는 곤궁한 아이라 '부귀'에 대해 아무런 개념이 없었다. 그는 소위 '부귀'하다는 사람에 대해 견문을 넓힌 적은 있었긴 했지만, 마을 어귀의 왕 원외[각주:10] 같은 부류에 불과했다. 그 왕 원외는 예순이라는 고령으로 세 번째 첩을 맞이했는데, 정잠이 보기엔 이미 부귀핍인[각주:11]이었다.

듣건대 엄쟁명이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닭털이나 마늘 껍질처럼 사소한 일로 가출한 적이 있었고 아주 교활하고 간사한 그들에게 당했다고 한다⋯⋯. 주도면밀하고 노련한 사부께서 거두신 것인데, 혜안(慧眼)이 진주를 알아봤다고 할 만하다.

늙은 사기꾼은 세 치 혀로 말을 능수능란하게 펼쳐 댔고, 당시 아직 나이가 어린 데다 세상 물정이 험악하다는 것을 모르는 대사형을 유괴해 입문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는 개산(開山) 대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엄씨 집안의 소공자가 실종되자 가족들은 당연히 안달복달했으며, 소 아홉 마리와 호랑이 두 마리의 힘을 다한 끝에야 잘못된 길로 빠진 엄쟁명을 찾아내었다 —— 엄 도련님은 목춘이 미혼약(迷魂藥)을 부어 넣은 건지, 아니면 순전히 스스로가 잘 배우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귀신에 사고력을 홀린 것처럼 한사코 집에 돌아가려 하지 않았고 기어코 남아서 사부님을 따라 수행하려고 했다.

이 도련님은 어렸을 때부터 응석받이로 자랐기에, 엄씨 집안은 당연히 자기 집안의 응석받이가 임시로 만들어진 엉성한 유랑 극단 같은 강호의 사기꾼을 따라 고생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말다툼해도 성과가 없자 할 수 없이 타협하여, 돈을 내어 이 문파를 키워 냈고 도련님을 극단에서 놀게 하면서 키우는 셈 쳤다.

지금 이 세상에 수진 문파의 종류는 대단히 많았다. 다만 그중 조금도 거짓이 없는 명문 정파와 사마외도는 모두 그 수가 거의 없었으며, 구주(九州)에 널리 퍼져 있는 대부분은 무허가 문파였다.

정잠은 마음속으로 손가락을 접어 가며 계산해 보았다. 부요파처럼 일대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공양하는 데다 다소 체면이 선 채로 살아남은 문파는 얼추 '가금[각주:12] 문파'라고 부를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대사형은 단지 대사형일 뿐만 아니라 '본 문파의 입을 것과 먹을 것을 대 주는 부모', '장문의 자본주'와 '부요파의 개산 대제자' 등의 매우 많은 역할도 겸하고 있기에 당연히 본 문파의 서열 일인자인 것도 모자라 장문마저도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 서열 일인자로 말할 것 같으면 —— 정잠은 보자마자 알았다, 그는 한마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방탕아임을.

'교만하고 사치스럽고 방종하며 방탕하다(驕奢淫逸)'라는 네 단어가 있다. 당시 대사형께서는 열다섯이 되셨을 때 외에 또 '방종'할 담력이 없었기에, 아직 '교만하고' '사치스러우며' '방탕하다'라는 세 단어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고 전부 명확히 했다.

목춘진인이 처음으로 깨끗이 씻은 한 쌍의 어린 제자를 데리고 엄 도련님께 다가갔을 때, 그 도련님께서는 머리카락을 빗던 중이었다 —— 장문께서 노망이 들어 예의를 몰라, 새벽부터 서두른 탓에 머리를 빗고 세수하기 전부터 폐를 끼친 것이 아니었다. 대사형께서는 매일 여러 번 머리를 빗으셔야 했다.

다행히 그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머리카락을 빗질한 끝에 머리가 매끈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대사형의 머리를 빗겨줄 자격이 있으려면 우선 여자여야 했다. 나이는 너무 적어도 안 됐고, 너무 많아서도 안 되며, 외모는 한 군데도 아름답지 않으면 안 되는 데다가, 성미가 조금이라도 고상하지 않으면 안 됐다. 아침부터 밤까지 머리를 빗고 향을 피우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했고, 한 쌍의 손은 반드시 부드럽고 연하면서도 옥처럼 하얗게 빛나야 했으며, 풍경을 해치는 굳은살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안 됐다.

설청 같은 부류의 도동들은 원래 엄씨 집안의 종이었으나 세심하게 엄선되어 산으로 보내졌고, 문파에 바쳐져 마음대로 부려졌다.

도련님 근처의 일은 도동이 필요 없었다. 듣자 하니 그가 남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 그들의 동작이 느리고 더뎌서 꺼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원(院) 안에 남아 몸 곁에 따라다니며 시중을 드는 이는 전부 여자아이들뿐이었고, 여러 종류의 아름다운 꽃들이 모여 언제나 봄을 이루게 되었다.

문에 들어서기 전, 정잠은 슬그머니 사부의 염소수염을 한참 동안 주시하다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사부의 수염은 빗으로 빗질한 적이 있다.

오는 길에 설청이 말하기를, 목춘진인이 그를 청안거에 머물도록 안배한 것은 그가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가다듬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정잠은 마음속으로 분명하지 않은 거북함이 조금 들었다. 그는 자신이 정신이 안정되지 않았고 평온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대사형의 거처에 도착한 지금, 정잠은 고개를 들어 '온유향(溫柔鄕[각주:13])'이라는 세 글자를 보았고, 튀어나온 심장을 끝내 배 속에다가 두었다[각주:14] —— 보아하니 그의 정신이 평온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부께서 노망이 나신 것 같다.

한편에 있던 한연은 어리광을 피우며[각주:15] 사리에 어두운 것을 재미 삼아 물었다.



"사부님, 대사형의 문어귀에 뭐라고 쓰여 있는 거죠?"



목춘진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그가 들을 수 있도록 읽어 주자, 한연은 눈을 멀뚱멀뚱 뜨고선 또다시 물었다.



"이건 사형께서 이후에 좀 더 온유해지라고 격려하는 의미인가요?"



목춘이 이를 듣고 대경실색하며 신신당부했다.



"이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대사형께서 듣지 못하게 하거라."



정잠과 한연은 버젓한 장문께서 상갓집 개처럼 꼬리를 마는 것을 보고, 보기 드물게 마음이 통한 채로 같은 생각을 했다.



'실로 어찌 이럴 수 있는가, 하늘의 이치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돌보지 않다니!'



그 두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서로 눈을 마주쳤는데, 둘 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황급히 사부를 따라 같이 꼬리를 말고는 본 문파의 첫 번째로 중요한 기술을 배웠다 —— 바로 협미신공[각주:16]이다.

사실 정잠은 처음 대사형 본인을 만났을 때 천인(天人)에게 닿을 정도로 놀랐다.

그 사람의 용모는 아직 설익었으나 방탕하고 제멋대로인 기운은 절정이었다. 그의 온몸에 두른 설백색의 비단 도포 위에는 아무한테도 보이지 않는, 숨은 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살짝 휘황찬란한 무늬는 몸을 움직여서 빛과 그림자를 움직여야 그 부분이 밝게 드러났다. 그야말로 뼈가 없는 듯이 조각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던 그는 눈꺼풀을 반쯤 늘어뜨리며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고, 흩어진 머리카락이 마치 발묵화(潑墨畵) 같았다.

소리를 들은 엄쟁명은 본체만체하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가 엷은 먹 같은 눈꼬리로 휘둘러 보았는데, 길고 한쪽 끝이 위로 휘어 있는 것이 이유 없이 교만하면서도 유화하고 세밀한 기풍을 휙 드러내었다. 사부를 봤으나 일어나려는 기색이 조금도 없던 그가 엉덩이를 아주 안정감 있게 앉아 있는 채로 느릿느릿하게 입을 열어 물었다.



"사부님, 한 번 외출하시더니 또 재미있는 물건을 무슨 두 개나 주워서 가져오셨어요?"



그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느리게 자라는 듯, 목소리에서 소년의 정취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 거기에 조금 애교를 부리는 듯한 어조가 더해져 뒤섞이니, 듣자니 더욱 어찌 수놈인지 암놈인지 분별할 수 있으리오[각주:17].

어떤 일이 있어도 제기랄, 떳떳해야 한다. 이런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은 의외로 편찮지는 않은 것처럼 보였다.

장문 어르신은 웃음 띤 얼굴로 손을 비비며 소개했다.



"아, 이 아이는 너의 셋째 사제인 정잠이고, 이 아이는 너의 넷째 사제인 한연이다. 모두 아직 어리고 세상 물정을 모르니, 앞으로 대사형인 네가 사부를 많이 도와 사제들을 일깨워줘야 한다."



엄쟁명은 한연의 이름을 듣고 긴 눈썹[각주:18]을 한번 찡그리더니, 얼굴 피부를 한 번 실룩거린 듯했다. 눈을 반쯤 뜬 그는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머리를 숙이듯 화로에서 갓 나온[각주:19] 넷째 사제를 힐끗 바라보았고, 곧 재빠르게 눈길을 돌렸다. 마치 시야가 더럽혀지는 일을 부닥친 듯했다.



"한연?"



대사형께서는 불만스러운 듯이 느릿느릿하게 품평했다.



"과연 사람은 그 이름대로라더니, 억울한 누명을 쓴 듯이[각주:20] 생겼군요."



한연의 얼굴은 이미 창백해져서 푸른 빛이 돌았다.

엄쟁명은 그를 한편에 내버려두고, 또다시 정잠 쪽으로 향했다.



"거기 있는 아이,"



그가 이어 말했다.



"이리 와보거라, 내가 한번 봐야겠다."

  1. 원문은 '唯恐天下不亂'으로, 주로 항상 사고만 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뜻한다. [본문으로]
  2. '머리 위 옅은 안개'의 원문은 '頭上淺薄的霧水'이다. 중국에는 영문을 모른다는 뜻의 '一頭霧水(머리에 안개)'라는 성어가 있고, '淺薄(옅은)'은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하다는 뜻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또한 '끈적끈적한 풀'의 원문은 '漿糊'으로, 해당 단어와 관련된 성어로 '一盆漿糊(머리가 어지럽다)'가 있다. 따라서 해당 문장은 '지식이 부족해 영문을 모르던 두 어린 제자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정도로 의역할 수 있다. [본문으로]
  3. 道童, 도 닦는 도사의 심부름을 하는 아이. [본문으로]
  4. 金童子, 장쑤성이나 저장성 등의 민담에 나오는 신선으로, 보통 복숭아랑 다른 것들이 올려진 쟁반을 손으로 떠받치고 있는 어린아이의 이미지이며 재물신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본문으로]
  5. 缺心眼, 결과도 고려하지 않고 아무런 근거 없이 일하며 기회를 살피며 일 처리하는 능력 없이 처세하는 데다, 세상 물정을 모르고 상대방의 말과 안색을 살피며 그 의중을 헤아리지도 않는 사람을 뜻한다. [본문으로]
  6. 원문인 '黑白分明'은 '옳고 그름이 분명하다'라는 뜻으로 다르게 번역될 수 있다. [본문으로]
  7. 원문인 '不動聲色'은 '감정이 얼굴에 나타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다르게 번역될 수 있다. [본문으로]
  8. 五官, 눈·코·입·귀·피부 또는 마음. [본문으로]
  9. 精雕細琢, 정밀하게 새기고 정교하게 다듬다. 정잠이 한연보다 더욱 자신을 가다듬은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10. 員外, 돈과 권세가 있는 부호. [본문으로]
  11. 富貴逼人, 직역하면 '부귀로 사람을 핍박하다'라는 뜻이나 '돈과 권력이 있어 사람이 모여든다'라는 의미도 지닌다. 출처는 북사 양소전(北史·杨素传). [본문으로]
  12. 家禽, 집에서 기르는 가축. [본문으로]
  13. 화류계, 사랑의 보금자리라는 뜻 [본문으로]
  14. 원문은 '一颗心终于放在了肚子里'으로, 심장이 튀어나와 있었다가 지금은 일이 해결되어 다시 몸 안으로 집어넣었다는 의미이다. [본문으로]
  15. 원문은 '撒嬌弄痴'로, 비슷한 뜻의 '撒嬌撒痴'은 총애를 믿고 일부러 어리광을 부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문으로]
  16. 夾尾神功, 꼬리를 마는 신공. [본문으로]
  17. 원문은 '安能辨我是雄雌'로, 출처는 북조의 민가 목란시(北朝民歌《木兰诗》)이다. [본문으로]
  18. 원문인 '長眉'는 미녀라는 의미도 있다. [본문으로]
  19. 원문인 '新鮮出爐'는 어떤 사물이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본문으로]
  20. 원문은 '冤枉(yuān wang)'으로, 그 발음과 성조가 한연(韓淵, hán  yuān)과 다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