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협선협답사기
주로 단메이(耽美) 소설을 번역한 개인 작업물을 백업합니다.
@mingmengsung
육효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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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mei 출판사, 싱가포르판 삽화

 

 

원문 링크: https://www.jjwxc.net/onebook.php?novelid=2134415&chapterid=1

 

문안

 

한 몰락한 문파가 잘난 척하는 원숭이, 말썽쟁이 요괴, 냉혹한 귀신, 바보와 잡종 도사의 손에서 어떻게 재건되는지에 대한 수진(修眞) 이야기. 

 

CP는 대사형이 연상~
사고뭉치 공 x 매몰찬 수

 
 

어머니의 정취는 거울 속의 꽃, 물에 비친 달과 같아서 홀연 흔들리다가, 정잠이 제대로 맡기도 전에 연기같이 흩어져 사라졌다.

 
 
정잠(程潜)은 세는 나이가 열 살로, 느릿느릿 자라는 키가 나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 가까워지자 그는 마당 입구에서부터 정방(正房)까지 땔나무를 안고 들어왔다. 땔감 한 묶음을 온전히 안기에는 조금 벅찼기에 두 번이나 왔다 갔다를 반복한 후에야, 비로소 뜨거운 땀을 닦으며 안심한 채로 불을 지펴 밥을 하는 데에 몰두했다.

요즘 며칠 동안 집에 손님이 있어 그의 아버지는 손님을 모시느라 바빴다. 채소를 씻고 불을 지피고 장작을 패는 등의 일들은 전부 정잠의 머리 위로 떨어졌는데, 이는 그를 다리 짧은 팽이로 만들어 버릴 만큼 바쁘게 만들었으며 이에 언제 어디서나 숨 돌릴 새도 없이 분주한 바람이 한바탕 불었다.

키가 너무 작아서, 정잠은 이미 부뚜막에 손이 닿을 수 있을지라도 큰 솥을 다루기에는 아직 조금 마땅치 않았다. 그는 정방의 모퉁이에서 찾은 작은 걸상을 밟고 있었다.

작은 걸상의 다리 네 개는 길이가 같지 않고 들쑥날쑥했다. 정잠은 여섯 살 때부터 걸상을 밟고 밥을 짓는 법을 배웠다. 하마터면 솥 안으로 넘어져 인육탕(人肉湯)이 될 뻔한 위험을 무수히 겪은 후에야, 그는 어떻게 하면 이 가지런하지 못한 받침대와 공존할 수 있는지를 습득했고 비바람에 힘없이 흔들리는 듯한 평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날, 그가 작은 걸상에 서서 큰 냄비에 물을 더 넣고 있던 그때, 큰형이 돌아왔다.

이미 열다섯 살이 된 정씨 집안의 맏형은 다 큰 젊은이었다. 온몸에 땀내를 풍기던 그는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사방을 한 번 훑어본 후에 한 손으로 어린 동생을 들어 작은 걸상 위에서 내려오게 했고, 약하지도 않고 세지도 않게 그의 등을 한 손으로 밀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할게, 넌 놀러 가."



물론 정잠이 정말 생각 없이 놀러 나갈 리는 없었다. 그는 총명하게 '큰형'이라고 부른 뒤에 묵묵히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푹 쉭 푹 쉭 소리를 내며 풀무질했다.

정 대랑(大郞)은 고개를 숙인 채 그를 흘끗 보았는데,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눈빛이 조금 복잡했다.

정씨 집에는 아들이 세 명 있으며, 정잠은 둘째였다. 어제저녁에 그 손님이 오기 전까지 정잠은 '정 이랑(二郞)'으로 불렸다.

대랑은 지금 '이랑'이라는 두 글자가 끝장이 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머지않아 이 간단하면서도 편리한 아명(兒名)은 그의 큰동생이었던 이 사람과 같이 탈바꿈된 채로 먼 곳에 떠날 것이다.

어제저녁에 온 손님은 도사였는데, 성은 무엇이며 이름은 무엇이냐고 묻자 불길하게도 뻔뻔스럽게 큰소리치면서 자신을 '목춘진인[각주:1]'이라 일컬었다. 다만 용모만 보아도 이 진인은 진짜 능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듬성듬성 기른 염소수염 한 움큼에 반쯤 감은 한 쌍의 삼각안(三角眼), 그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장포 아래에는 가냘프고 폭이 좁은 발 한 쌍이 드러나 있어, 어떻게 봐도 선풍도골[각주:2]임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허장성세로 과시하며 사기를 치고 다니는 점쟁이 같았다.

원래 세속을 두루 돌아다니던 도중 이곳을 지나가던 진인은 물 한 사발을 청하러 여기에 왔다가 예상치 못하게 정 이랑을 만났다.

그때 정 이랑은 막 밖에서 도망쳐 돌아온 참이었다 —— 마을 어귀에 오랫동안 과거 급제를 하지 못한 늙은 동생[각주:3]이 학생을 받아 책을 읽는 법을 가르쳤으나, 늙은 동생의 학문은 아주 형편없었다. 다만 극악무도하게도 스승을 처음 찾아뵐 때 드리는 예물을 받았는데, 농사짓는 집의 소금에 절여 말린 고기나 과일 또는 채소는 전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오직 진짜 금과 은으로 된 엽전만을 받았다. 게다가 그 액수도 기준이 없었고 —— 돈을 물 쓰듯 다 써버릴 때마다 학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인품은 정말 성현의 책으로 도(道)를 강의하고 수업하기에는 걸맞지 않았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시골 아이들은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고, 주위 몇십 리를 둘러봐도 책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정가의 가정 형편으로는 분명 아들들에게 공부를 시켜 줄 여윳돈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렵고 까다로워 읽기에도 부자연스러운 고문체(古文體)에 정 이랑이 천성적인 모종의 기이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떳떳하게 갈 수는 없었던 그는 할 수 없이 항상 엿들을 수밖에 없었다.

늙은 동생은 조그마한 침방울 하나라도 모두 심장의 피를 내뱉으며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했기에 남이 거저 듣게 두지 않았다. 항상 수업한 지 반쯤 지나면 바로 경계하면서 밖에 나와 순찰을 한차례 돌았다.

그러면 정 이랑도 할 수 없이 원숭이로 변신해 늙은 동생의 집 마당 입구 어귀에 있는 커다란 홰나무 속에 꼭꼭 숨었고, 매번 엿들을 때마다 '수신제가평천하[각주:4]'의 뜨거운 땀을 이마에 흘려야 했다.

어젯밤 저녁에 정 이랑은 이렇게 머리에 뜨거운 땀을 흘린 채로 아버지의 재촉을 받고 손님에게 물 한 사발을 가져다주었으나, 그 기이한 손님은 받지 않았다. 차가운 나뭇가지처럼 바싹 마른 손을 내민 그는 골상(骨相)을 보지도 않고, 별 진기한 공법마저도 쓰지 않았다. 다만 이랑의 얼굴을 가볍게 끌어당기더니, 있는 힘을 다해 '서생의 융통성 없는 모습'을 흉내 내는 어린아이와 잠깐 시선을 마주 보았다.

진인이 이 눈 안에서 무슨 실마리를 알아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 보고 난 후에 넋이 나간 채로 고개를 끄덕거리던 그는 아주 그럴듯하게 정가 사람들에게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엔 이 아이는 자질이 아주 훌륭하니, 장차 등천잠연[각주:5]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큰 행운이 있을지도 모르는 데다가 지중지물[각주:6]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진인이 이 말을 했을 당시에 대랑도 그 자리에 있었다. 대랑은 사장을 따라 밖에서 견습생으로 남으로 오고 북으로 가는 사람들을 좀 만나보았기에 자신도 식견이 좀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눈을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자질이 좋은지 나쁜지를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랑은 바로 경멸하며 이 강호의 사기꾼을 반박하려고 했지만, 입을 열었어도 목소리는 내지 못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이 허튼소리를 이미 귀 기울여 듣는 것을 발견한 그는 순간 놀라 간담이 서늘해진 채로 무언가를 깨달았다.

정가는 원래 부유하지 않았다. 작년에 그의 어머니가 남자아이를 또 낳았는데, 막내는 어렵게 낳았기에 그의 어머니는 출산 후에 줄곧 허약해져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이렇게 되니 집에는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줄어들게 되었고, 게다가 온종일 약을 먹어야 하는 병주머니가 늘어났다. 원래도 부유하지 않았으나 갑자기 한층 더 착금견주[각주:7]해졌다.

올해의 작황은 좋지 않았다. 몇 달 동안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눈을 부릅뜨고도 낟알마저 거두지 못한 큰 흉년이다. 형제 세 명은⋯⋯ 아마 먹여 살리지 못할 것 같다.

대랑은 부모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알고 있었다. 자신은 이미 견습생으로 일 년 반을 보냈고, 다시 일 년 반을 견디면 돌아올 때 가족에게 돈을 만나게 할 수 있었고 또 이것은 정가가 가진 미래의 희망이었다. 막내는 아직 포대기에 싸여 있기에 아버지와 어머니로서는 당연히 절대로 내버리지 못했다. 그러면 중간에 있는 이랑만이 남게 되는데, 완전히 잔식구여서 남겨 두어도 쓸모가 없었다. 만약 지나가던 도사에게 들려 보내어 수선(修仙)을 하게 시킨다면 그것도 거처가 될 것이다.

수선에 성공한다면 정가의 어르신들이 잠든 봉분(封墳)에 길게 자라난 풀이 대운(大運)을 맞게 되는 것이다. 수선을 못 해도 별 상관이 없었다. 그가 다른 사람이랑 같이 떠난다면, 강호에 가는 것도 좋았고 허장성세로 사기를 치고 다니는 것도 좋았다. 먹을 밥만 충분하다면 장차 다 클 수 있었으니 이것도 활로(活路)인 셈이다.

목춘진인과 정가의 서목촌광[각주:8]한 집주인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아주 빠르게 이 '장사'에 대해 담합했다. 진인은 부스러기 은전 한 덩어리를 남겼고 그들은 한 손으로는 돈을 받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사람을 넘겼다[각주:9]. 정 이랑은 그로부터 정잠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날 오후, 그는 속세의 인연을 끊고 사부와 같이 길을 떠나야만 했다.

대랑은 이 둘째 동생과 나이가 몇 살 정도 차이가 나기도 했고 평소에 같이 있어도 별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사이가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둘째 동생은 어릴 때부터 철이 들어서 울지 않는 데다가 시끄럽게 굴지도 않았으며, 지금까지 말썽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옷은 맏형의 남은 것을 얻어 입었고 먹고 마시는 것은 모두 막내와 아픈 어머니께 양보했다. 오직 일을 할 때에만 전투에서 말을 달려 앞에 나서듯이 앞장섰으나 원망이 담긴 말을 여태까지 하지 않았다.

대랑은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는 그의 이 동생을 몹시 사랑하고 귀여워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집안이 궁핍하니 먹여 살릴 수가 없는 데다가 아직 정가의 대랑이 한 집안을 책임지고 지탱할 때가 오지 않았으므로, 크고 작은 경조사에 그가 말을 하더라도 전혀 책임을 질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아이는 혈육인데, 팔 수 있으면 바로 팔아버린단 말인가?

대랑은 생각하면 할수록 서글퍼졌다. 그 늙은 사기꾼을 업신여기면서 그 툭 튀어나온 이마를 쇠 국자로 때려 구멍을 내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난날을 떠올리고 앞날을 생각하니 아무래도 감히 그러지는 못했다 ——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그가 정말 이런 패기가 있었다면 사람을 따라 견습생으로 식당에서 잡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민가를 습격하여 약탈을 일삼는다면 어찌 돈이 샘물처럼 솟아나 콸콸 흐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각에 대한 맏형의 울분 쌓인 응어리를 정잠이 완전히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한 아이였다고는 할 수 없는 데다가, 일곱 살에 시를 짓거나 열세 살에 재상(宰相)의 자리에 오르는 신동과는 한데 섞어 논할 수도 없었다. 다만 일반적인 수준으로 속이 깊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선 밤늦게 주무시고(起早貪黑), 맏형은 별빛을 이고 나가 달을 지고 돌아왔으며(披星戴月), 어머니의 눈 속에는 맏형과 막내가 들어와 있어 그를 들여놓을 공간이 없었다. 이 때문에 정가에서는 그를 때리거나 욕하는 사람이 없었고, 또한 그를 안중에 두는 사람도 없었다. 이것들을 정잠은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천성적으로 눈치가 있었고 될 수 있으면 소란스럽게 굴어서 미움을 받지 않으려 애썼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것 중에 가장 상식 밖의 일은 늙은 동생의 커다란 나무에 기어올라서 조리도 없고 당치도 않은 성현의 책을 한 귀로 듣는 것이었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일을 열심히 하고 아주 부지런하며 착실한 그는 자신을 식당의 어린 잡일꾼, 어린 머슴, 어린 하인으로 여겼으나 —— 다만 아들로 여기지는 않았다.

정잠은 아들이 된다는 게 어떤 기분인 건지 잘 몰랐다.

아이들은 원래 말을 쓸데없이 많이 하고 이리저리 싸돌아다녀야 하는데, 정잠은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히 말참견하고 장난을 칠 특권이 없었다. 그는 마음속에 할 말이 있어도 전부 참고 토로하지 않았다. 늘 이런 식이다 보니 말이 밖으로 흩어지지를 못해 날카로운 칼끝은 내면을 향할 수밖에 없었고, 그의 작디작은 명치 속에서 이미 많은 곳이 파인 그의 깊은 마음속을 찔러 들어갔다.

비에 이곳저곳이 움푹 파인 모래사장이 가슴에 있는 정잠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를 팔아넘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히려 기이한 고요함이 다소 있었는데, 마치 오래전에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예상한 것 같았다.

출발할 때가 되자, 정잠의 몸이 약한 어머니는 파천황[각주:10]이게도 침대에서 내려왔고, 부들거리며 그를 한쪽으로 불러낸 뒤 눈가를 붉힌 채로 그에게 작은 보따리를 쑤셔 넣어주었다. 안에는 깨끗이 빨아 놓은 의복 몇 벌과 밀가루를 발효시킨 다음 구워서 만든 병(餠) 열두 개가 들어 있었다. 말할 필요가 없게도 의복은 전과 다름없이 맏형이 고쳐 입지 못하게 된 것이었고, 병은 그의 아버지가 어제저녁부터 밤까지 만든 것이다.

어쨌든 간에 자기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살이었기에, 그의 어머니는 그를 바라보면서 참지 못하고 손을 소맷부리에 넣어 가볍게 뒤적거렸다. 정잠은 그녀가 바들바들 떨면서 동전 한 꿰미를 찾아내는 것을 보았다. 그 울퉁불퉁하고, 어두운 색채의 동전에 갑자기 정잠의 냉담한 심금이 미미하게 울렸다. 그는 마치 추워서 얼어붙은 작은 짐승처럼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곳에서 코끝을 움찔거리며 어머니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맡았다.

그러나 그 엽전 한 꿰미는 아버지 눈에도 띄었다. 남자는 옆에서 거듭 기침 소리를 냈고, 그의 어머니는 할 수 없이 눈물을 글썽이며 그 엽전 꿰미를 다시 옷 안에 감추었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정취는 거울 속의 꽃, 물에 비친 달과 같아 홀연 흔들리다가, 정잠이 제대로 맡기도 전에 연기같이 흩어져 사라졌다.



"이랑, 이리 오거라."



무엇이든지 간에 무미건조하게 반응하는 그의 어머니는 정잠의 손을 잡고 그를 뒷방[각주:11]으로 이끌었으나, 두 걸음도 못 가 숨을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완전히 지쳐 버린 듯이 등받이가 없고 폭이 넓은 나무 걸상에 앉은 그녀는 지붕에 매달려 있는 작은 등잔불을 가리키더니 힘이 없고 숨결뿐인 목소리로 물었다.



"이랑, 저게 뭔지 아니?"



정잠은 무관심한 듯이 고개를 들어 힐끗 보았다.
 
 

'선인(仙人) 장명등(長明燈).'
 


사람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이 작은 등잔은 정씨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보물로,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정잠의 증조할머니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혼수라고 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하나뿐인 등잔은 심지가 없었고 등유도 필요가 없었으며 수수하면서도 고풍스러운 흑단 밑받침에는 몇 줄의 주문이 새겨져 있었다.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있는 등잔은 주위로 한 척 정도 되는 공간을 오래오래 밝게 비추었다.

그렇지만 정잠은 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낡았지만 좋은 물건을 여기다 걸어놓다니, 여름에 벌레가 꼬이는 것을 제외하면 또 무슨 용도가 있겠는가?

다만 선기(仙器)인 이상 현실적인 용도가 꼭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이웃이나 동네 사람들이 이따금 손님으로 방문하거나 놀러 올 때 꺼내서 한두 번 뽐낼 수 있으면 되었다. 시골 촌놈으로 말하자면, 이런 물건은 대대로 물려받을 수 있는 보물덩어리였다.

소위 '선기'라는 것은 바로 '선인'이 주문을 새겨넣은 물건인데, 평범한 속인이 모방하려 해도 모방할 수가 없었다 —— 선기는 종류가 아주 많은 데다가 용도는 더더욱 천태만상이었다. 기름을 넣지 않아도 되는 등불, 불에 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종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침대 등등, 하나뿐이 아니어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었다.

예전에 마을 어귀에서 강호를 누비던 설서[각주:12] 선생이 온 적 있었는데, 번화한 대성(大城)에 있는 '선인 벽돌'로 지어진 저택은 대낮에 빛나는 것이 유리를 입힌 탑첨(塔尖) 같았고 금과 청옥이 황궁처럼 휘황찬란하다고 말해 주었다. 부귀한 집안이 쓰는 밥그릇의 겉면에는 고위 선인이 쓴 주문이 있어 백 가지의 독을 피하고 갖가지 병을 떨쳐 버릴 수 있으며, 깨진 그릇의 자기 조각 한 개는 황금 네 냥의 값어치가 있기에 여전히 사람들의 이목을 이끄는 데다가 뜨거운 사랑이 그치지 않았다고도 했다.

'선인'은 즉 '수진지인[각주:13]'이기도 하다. 또 이들은 '도인'이나 '진인'이라 불리우는데 —— 전자는 보통 자칭으로, 다소 겸손하게 들렸다.

듣건대 그들은 기(氣)를 끌어들여서 신체에 들이고 천지와 통하는 것을 입문으로 삼는다고 했다. 게다가 수련을 통해 도달한 경지가 더 심오해지면 벽곡하여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었고 상천입지[각주:14]할 수 있는 데다가, 더 나아가 불로장생하며 겁(劫)을 겪고 신선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 종종 전설이 세상에 널리 전해졌는데, 진짜 선인은 코가 몇 개나 되고 눈이 여러 개나 된다고 했다. 이를 아무도 본 적이 없고 다들 오직 들어보기만 했으니 아주 불가사의했다.

선인들은 정처 없이 떠다녀 종적이 일정하지 않았고, 좋은 선기는 천금을 더 들여도 구하기 힘든 물건이기에 고관과 귀인들이 오리처럼 떼 지어 몰려들었다.

몸을 굽힌 정가(程家)의 부인은 간곡한 눈빛으로 정잠을 바라보았고 기분을 맞춰 주려는 듯이 따뜻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랑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 어미에게 장명등 하나를 만들어 주지 않으련?"



정잠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그녀를 흘끗 보더니, 속으로 박정하게 생각했다.



'꿈 깨십시오, 당신이 오늘 저를 문밖으로 내보냈으니 앞으로 공부를 마치든 마치지 않든, 죽었든 살았든, 돼지가 되든 개가 되든 저는 절대로 당신을 다시 보러 오지 않을 것입니다.'



정가 부인은 갑자기 멍해졌다. 이 아이가 부모랑은 닮지 않았고 도리어 친정 첫째 오빠가 조금 비쳐 보인다는 것을 발견한 탓이다.

집안 조상의 무덤에서 피어오른 자그마한 푸른 연기[각주:15]인 그녀의 큰오빠는 어려서부터 농부의 아이 같지 않았고, 그림 같은 미목(眉目)을 지니고 있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부모님이 집안의 재산을 모두 써서 그가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주었기에 그도 애써 노력하여 열한 살에 수재(秀才)에 합격했고, 모두가 그녀의 집안에 문곡성[각주:16]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곡성이 아마 인간 세상에 오래 머무르기는 원하지 않았는지, 향시(鄕試)에 합격하기도 전에 일순간 오호 통재라 그만 병으로 죽고 말았다.

큰오빠가 죽었을 때는 정가 부인이 아직 어렸기에 조금 남은 인상도 이미 흐릿해졌지만, 지금 갑자기 기억이 났다. 그 사람도 살아 있을 적에 이렇게 마음속에 방방 뛰어다닐 듯한 기쁨이나 격한 노여움이 이글이글 타올라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이렇게 연한 색으로 그림을 그린 것처럼 흘끗 보고는 스스로 자중한 채로 말소리나 얼굴빛을 드러내지 않았고, 또 사람의 마음에 두려움을 싹트게 만들어 어떻게 해도 친해질 수가 없었다.
 
정가 부인은 자기도 모르게 정잠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고, 동시에 정잠도 흔적 없이 뒤로 반걸음 물러났다.

그는 바로 이렇게 고분고분하고도 말 한마디 남기지 않은 채로 두 모자(母子)의 다시 만나기 어려운 이별을 뚝 끊어버렸다.

정잠은 자신의 모든 행동이 원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원망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에게 낳아주신 은혜와 양육해 주신 은혜가 있었다. 설령 그들의 은정(恩情)이 도중에 그쳤고 반쯤 양육한 뒤 그를 필요로 하지 않더라도, 그건 기껏해야 공적과 과실이 서로 상쇄될 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로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말했다.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안중에 없어도,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삼각안을 지닌 도사에게 팔아넘겨도, 이것도 아무것도 아니다. 

  1. 木椿眞人, 참죽나무 진인. 진인은 도가(道家)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을 뜻하는 단어이다. [본문으로]
  2. 仙風道骨, 세속을 초월한 듯한 풍채와 풍격. [본문으로]
  3. 童生, 수재(秀才) 시험을 보지 않았거나, 그 시험에 낙방한 사람. [본문으로]
  4. 修身齊家平天下, 자기 몸을 갈고닦으면 집안이 다스려지고, 집안이 다스려져야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 수 있다. 유가(儒家)의 이상적인 인간상인 군자(君子)가 지켜야 할 덕목이다. [본문으로]
  5. 腾天潜渊, 직역하면 하늘에 오르고 심연에 잠복한다는 뜻이며, 의역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간에 뭔가가 된다는 의미가 있다. 비슷한 발음의 潜龍腾渊(잠룡등연)의 변형으로 보인다. 잠룡등연이란 잠룡(아직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숨어 있는 영웅)이 못 위로 날아오른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6. 池中之物, 못에서 기르는 물고기. 포부 없이 남의 밑에서 만족하는 사람. [본문으로]
  7. 捉襟見肘, 옷깃을 여미니 팔꿈치가 나와 버릴 정도로 옷이 낡아빠졌다. 옷이 남루하고 생활이 어려움을 뜻한다. [본문으로]
  8. 鼠目寸光, 쥐의 눈은 눈곱만한 빛만을 볼 수 있다. 시야나 식견이 좁은 것을 뜻한다. [본문으로]
  9. 원문인 '一手交錢,一手交人'은 중국의 속담인 '一手交錢,一手交貨(한 손으로 물건을 건네고 한 손으로 돈을 받다)'에서 '貨(물건)'이 쓰인 부분을 '人(사람)'으로 변형한 것이다. [본문으로]
  10. 破天荒, 이전에 이뤄내지 못한 일을 처음으로 하다. 손광헌(孫光憲)의 《북몽쇄언(北夢瑣言)》에 나오는 말로, 당(唐)대의 형주(荊州) 지방에서는 진사에 급제하는 사람이 없어 이를 천황(天荒, 한 번도 개간하지 않은 땅)이라고 불렀는데, 유세(劉蛻)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급제하자 이 일을 파천황(천황을 깨다)이라고 한 데서 유래. [본문으로]
  11. 정방 양쪽에 있는 방으로, 직접 뜰로 통하는 입구가 없어 들어가려면 다른 방을 거쳐서 들어가야 한다. [본문으로]
  12. 說書, 창(唱)과 대사를 사용하여 삼국지연의나 수호전 등 시대물 또는 역사물을 이야기하는 통속 문예 중 하나이다. [본문으로]
  13. 修眞之人, 수진(진인이 되기 위해 갈고 닦는 것)하는 사람. [본문으로]
  14. 上天入地, 하늘로 올라가고 땅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다. [본문으로]
  15. 원문은 祖坟冒青烟를 변형하였다. 득도하고 신선이 되면 몸이 가벼운 연기로 변하는데, 조상의 무덤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는 말은 바로 신선이 된 조상이 자손의 행운을 지켜준다는 것을 지칭한다. 즉 자손이 번성하고 부귀공명하게 되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본문으로]
  16. 文曲星, 문인의 운명을 주재하는 별을 뜻하기도 하고, 관직이 높은 문관을 뜻하기도 한다. [본문으로]